2002년 2월10일, 일요일, 델리, 맑음
32.1 설날기념 한국가족들과 전화통화
지금 한국은 설날 연휴기간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도 아버님집에 모두 모였다. 오늘 아침 한국시간 오후1시, 여기 인도시간 9시30분에 전화하기로 약속했었다. 여기서 한국에 전화를 걸면 분당 2,500원정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인도로 걸면 각종 003??등의 가격은 분당 1,000원 이하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다 모인 오늘, 한국에서 여기 하숙집으로 전화하기로 이번주 초에 이메일로 약속을 했었다.
한달만에 은주의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고 목이 메이는지, 잠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은주 목소리만 들었다. 발음이 많이 좋아졌고, 단어만 말하던 한달전과는 달리 이제 문장을 만들면서 아빠를 불렀다. “아빠 어디야? 언제와? “ 하는 소리에 가슴이 메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빠 공부 열심히 해, 아빠 건강해야 해, 나도 잘 있어, 아빠 천천히 와도 돼”
시키는데로 다 따라서 말한다. 너무너무 기특해서 계속 목이 메었다.
부모님께 새해인사 드리고, 형님들하고도 안부를 전했다. 그리고 은주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너무너무 이쁜짓을 많이해서 정말이지 부모님에게도 주위에서도 인기가 최고라고 한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혼자서 명상에 잠겼다.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들과 목소리를 나눈 그 순간을 좀더 간직하고 싶었고, 침해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절이다 보니 더욱더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하루였다.
아~ 진짜 설날은 화요일인데, 난 화요일이 제일 바쁜 날이다.. 이런 비극…
32.2 인도의 힘은 누구로부터 나오는가?
오늘 머리를 커버하기 위하여 모자를 사기로 하고 안셀플라자라고 하는 델리에서 엄청나게 비싼 쇼핑센타에 갔다. 전에 기술한 바 있는 곳인데, 여기 물가는 우리나라물가보다 비싸다. 그래서 주로 인도의 부자들만 오는 쇼핑센타이다. 여기에 오면 나이키, 아디다스 등 세계 유명브랜드가 다 있다.
거기서 나이키 모자를 하나 샀다. 그럭저럭 안 어울리지만 짧은 머리를 가리기에는 충분히 좋은 모자다. 가격은 비싸다.
오늘도 여기에는 돈자랑하는 인도인들이 많이 와 있었다. 지네들끼리는 알아듣기도 힘든 인도식 영어를 마구마구 구사하면서,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이 비싼 가격에 물건을 사고 있다. 몸에는 이것저것 비싼 귀금속이 붙어있고, 남자들은 휴대폰을 손에 항상 들고 다닌다. 애들은 건방지기 짝이 없다.
이들이 인도의 상류층이다. 물론 인도의 상류층이 전부 이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버스를 탔는데, 이런… 버스를 잘못 탔다. 버스가 시리포트로 들어가더만, 이상한 동네로 간다. 나는 시간도 많고 해서 버스관광이나 하는 셈치고 그냥 내리지 않고, 타고갔다. 마침 자리도 생겨서 창가쪽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달렸을까? 공단을 지나고 나니, 슬럼가가 나온다. 정말로 지저분하고, 길거리는 거지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문득 겁이 났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려서,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그냥 탔다. 또 한참을 달렸다. 다시 공단이 나오는데, 옆에 큰 시장이 있어서 내려서 시장 구경을 했다. 1시간을 걸어도 끝이 안보이는 엄청나게 큰 시장이었다. 시장의 반대편에는 공단이 보였고, 그 옆에는 역시 슬럼이 있었다. 지저분하고, 길거리에서는 똥오줌 냄새가 진동을 하기도 했다.
문뜩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인도를 이끄는 힘은 누구에게서 나오는가?
아까 본 돈 잘쓰는 부자 인도인인가? 아니면 지금 보고 있는 저 빈민들인가?
돈 잘쓰는 부자들의 자본의 힘인가? 아니면 저들의 값싼 노동력인가?
잠시 딜레마에 빠졌다.
결국 그 자리에서는 답을 못 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날은 인도에서 설날을 맞이해서 한국 가족과 통화하고 인도의 본질적인 면을 생각하게 한 하루였네요.
두번째 주제였던 인도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는 내가 17년간 인도에 살면서 항상 생각하고 조금씩 다른 결론을 내어온 주제입니다. 인도에는 똑똑한 사람도 많고 부자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인도를 설명할수 없습니다. 밖에서 비추어진 인도의 모습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값싼 노동력에 의한 경제성장 없이는 부유층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경제만이 아닙니다. 인도의 정치 또한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표, 중산층의 표에 의하여 좌지우지 되기 때문입니다.

창밖으로 구르가온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것을 보며, 이 일기를 다시 꺼내 보니 17년간 제 머릿속을 맴돌았던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봅니다. 바로 "이 거대한 나라를 움직이는 진짜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날 마주했던 기억, 두 개의 인도
이 일기를 쓴 그날, 당시 델리에서 가장 비싼 쇼핑몰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모자를 샀습니다. 그곳에는 화려한 부를 과시하는 인도의 상류층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마구 돈을 쓰는 모습을 씁쓸한 마음으로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잘못 타는 작은 실수 하나가, 저를 완전히 다른 인도로 데려갔습니다. 버스는 공장지역을 지나 악취와 가난이 뒤섞인 슬럼가로 들어섰고, 저는 그곳에서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날, 쇼핑몰의 번쩍이는 불빛과 슬럼가의 먼지 자욱한 풍경 사이에서, 저는 깊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과연 인도를 이끄는 힘은 저 부유층의 '자본'일까요, 아니면 이 빈민층의 '노동력'일까요?
보이는 엔진과 보이지 않는 엔진
밖에서 본 인도의 힘은 단연 '보이는 엔진'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계적인 IT 기업, 눈부신 경제 성장률,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재벌들. 그들은 인도의 발전을 견인하는 강력한 동력이며, '빛나는 인도(Shining India)'의 상징입니다. 쇼핑몰에서 마주친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바로 그 증거일 겁니다.
하지만 그 엔진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돌아가는 또 다른 엔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로 끝이 보이지 않던 시장의 상인들, 공단의 노동자들, 도시의 기반을 닦는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값싼 노동력이 없었다면 인도의 경제 성장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나의 엔진 없이는 다른 엔진도 굴러갈 수 없는, 이것은 거대한 공생 관계입니다. 보이는 엔진이 인도의 '속도'를 낸다면, 보이지 않는 엔진은 인도의 '규모' 그 자체를 이룹니다.
권력의 저울을 움직이는 힘
이러한 공생 관계는 정치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자본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세계 최대 민주주의'라는 저울 위에서는 결국 '수(數)'의 무게가 결정적입니다.
인도의 정치는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중산층의 표에 의해 움직입니다. 부유층과 엘리트들이 미디어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어도, 선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다수의 유권자입니다. 정치인들은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복지 정책을 내걸고, 종교를 이용하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려 애씁니다. 인도의 방향키는 결국 이름 없이 살아가는 다수의 손에 쥐어져 있는 셈입니다.
결론: 모순속의 공존, 그것이 인도의 힘
17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한쪽'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인도의 진짜 힘은 부유층의 자본에서도, 빈민층의 노동력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양극단이 서로를 필요로 하며 만들어내는 '위태로운 균형'과 '혼돈 속의 역동성' 그 자체에서 나옵니다. 자본과 노동, 엘리트와 대중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만들어내는 이 끊임없는 긴장 상태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거대한 나라가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자본의 효율성과 노동의 광대함, 엘리트의 비전과 민중의 투표가 충돌하고 융합하며 예측 불가능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나라. 17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이 거대한 공생 관계를 매일 목격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 모순의 탄력성이야말로,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인도만의 진짜 힘이 아닐까요.
17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인도가 멈추지 않고 변해가는 한, 이 질문에 대한 저의 생각 또한 계속해서 깊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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