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4일, 일요일, 콜카타, 가끔 비
207.1 아~ 벌써 8월이다.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문뜩 8월임을 생각하게 됐다.
네팔 들어갔다가 약 10일정도 있다가 파트나, 바라나시, 록노우 거쳐서 8월말에 델리에 들어가면, 9월 한달 법인 OJT 생활하고 나면 드디어 한국에 가는 구나!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에는 마냥 끝없는 여행인 것 같았다. 1월부터 시작한 델리에서의 4개월도 힘들었지만, 근거 없이 여기저기를 여행 다니기를 4개월째인데, 아무 인연도 없는 낯선 곳에서 혼자서 호텔 부킹하고, 찾아가고, 먹을 만한 식당 찾아 다니고, 지도 들고 마냥 걷기를… 정말 한치 앞도 예상 할 수 없는 그런 여행을 했었다.
그런데, 벌써 8월이다. 이제 앞으로의 일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 날이 눈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귀여운 딸 은주가 많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내가 떠날 때, 20개월 밖에 안됐던 은주가 요즘 전화를 하면 정말 말을 잘한다. 노래도 잘 부르고, 어쩔 때는 전화에 대고 투정도 부린다.
아직도 1월의 떠나는 날 아침, 귀엽게 잠을 자고 있던 은주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떻게 변했을까?
매번 바뀌는 호텔마다 거울에 딸 사진을 끼워 놓고 손으로 쓰다듬었다.
가족 생각만 하면 왜 이렇게 가슴이 매어지나…
하여간에… 이제 끝이 보이니까 일에 활력이 생긴다.
하지만 조금 조급해지기도 한다.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조금 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매일 열심히 하긴 하는데, 뭔지 조금 불안하다.
207.2 또 다른 TTF(Travel & Tourism Fair)에 갔다.
아니, 콜카타에 오니깐 여기도 TTF를 하네.
지난 번에 내가 방갈로에 갔을 때도 TTF를 해서 좋은 구경을 했는데, 여기 오니깐 여기도 하고 있다.
알아보니, TTF는 델리, 뭄바이, 방갈로, 첸나이, 콜카타에서 매년 열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번 것은 28번째 라고 한다.
콜카타의 TTF은 8월2일, 3일, 4일 3일간 네타지 실내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다.
방갈로의 TTF와 마찬가지로 실내체육관에 조그만 스톨을 많이 만들어서 각 호텔, 주, 나라, 항공사 등이 나와서 홍보활동에 열중이었다. 입장객들은 방갈로보다 더 많았는데, 눈에 띄는 것은 외국인이 많다는 점이었다.
각 주별로 자기네 주의 관광가이드 책자와 호텔 소개, 관광지 소개에 열심이었고, 호텔에서도 팩키지 상품을 준비하여 소개하고 있었다. 외국에서도 많은 참가하고 있었는데, 태국, 싱가폴,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쉬, 남아공, 이탈리아에서도 나왔고, 특이한 것은 네팔에서도 정말 크게 홍보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콜카타가 네팔로 들어가는 관문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마침 네팔로 들어갈 예정이어서 네팔 창구로 가서 이것 저것 많이 물어보고 정보를 얻었다. 또, 뱅골지역의 관광 안내도 많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방갈로에서는 무료 입장이었는데, 여기는 20루피 입장료를 받고 있다. 이것도 지역마다 다른가 보다.
[인도 콜카타] 24년 전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 인도를 걷는 청춘들에게 띄우는 편지
'2002년 8월 4일, 일요일, 콜카타, 가끔 비.'
콜카타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길고 길었던 1년간의 인도 '지역 전문가' 과정의 끝이 처음으로 피부에 와닿았던 날이었습니다.
일기장을 펼쳐보니, 당시 서른한살 청년이었던 제가 느꼈던 막막함과 지독한 외로움, 그리고 가족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스마트폰은커녕 구글 지도조차 없던 시절,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매일 호텔을 구하고, 밥 먹을 곳을 찾고, 무거운 종이 지도를 들고 끈적이는 거리를 끝없이 걸어야 했던 그 4개월간의 배낭여행(을 빙자한 시장조사)은 상상 이상으로 혹독했습니다.
매번 바뀌는 낯선 호텔 방 거울 틈에 20개월 된 딸 은주의 사진을 끼워놓고, 잠들기 전마다 그 작은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삼키던 밤들이 수없이 많았죠. 어쩌다 한번, 잘해야 1주일에 한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딸아이의 투정과 노랫소리에 가슴이 미어지면서도,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매일 아침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시장통으로 나섰던 시절이었습니다.
내일 새벽 네팔행 비행기를 앞둔, 24년 전의 나에게
우연히 들른 실내체육관(네타지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TTF 관광 박람회'에서 네팔 여행 정보를 잔뜩 얻어오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던 그날의 저에게, 2026년 현재 인도를 제2의 고향 삼아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50대의 제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많이 덥고 외롭지? 내일 새벽 4시 반에 파업을 뚫고 공항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가야 하는 그 황당한 상황도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어.
매일 밤 딸내미 사진 보면서 울컥하고,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듯 돌아다니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안해하고 있는 거 다 안다. 완벽한 결과물에 대한 강박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겠지.
그런데 말이야, 정말 잘하고 있어. 지금 네가 그 끈적이는 콜카타 시장통에서 흘린 땀방울, 인력거꾼들과 부대끼며 느꼈던 그 생생한 감각들, 그리고 길을 잃고 헤매며 온몸으로 체득한 그 '인도라는 맵고 짠 현실'이 결국 나를 만들었어. 네가 그때 그토록 혹독하게 버텨준 덕분에, 나는 '인도 법인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자타공인 인도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우리 가족 남부럽지 않게 잘 건사할 수 있었단다. 은주도 이곳 인도에서 아주 반듯하고 훌륭하게 잘 자라주었고 말이야. 심지어 네가 그토록 불안해하며 다졌던 그 기반 덕분에, 나는 지금 인도에서 조기 은퇴까지 하고 꽤 근사한 인생 2막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어. 그때 네가 거울 속 딸아이 사진을 보며 다짐했던 그 모든 것들, 내가 다 이뤄냈으니 이제 너무 불안해하지 마. 내일 네팔행 비행기, 캔슬 안 되고 무사히 탈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푹 자둬라.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이 네 지친 마음을 꽤 위로해 줄 거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줘서 정말 고맙다!"
그리고 지금, 인도로 들어오는 젊은 후배님들께
마지막으로 24년 전의 저처럼 지금 막 인도 땅을 밟으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젊은 청춘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낯선 곳, 타지 생활이 당연히 외롭고 막막하겠지요. 때로는 인도의 상식 밖 일들에 지치고 무너질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지금 여러분이 흘리는 땀방울과 버텨내는 시간은 결코 여러분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이 척박하고 거대한 인도라는 땅은 훗날 여러분을 대체 불가능한, 아주 희소성 있는 전문가로 훌쩍 키워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겪는 그 모든 고생은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든든한 서포터이자 무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앞이 캄캄하고 힘들더라도 자신을 믿고 묵묵히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인도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신 모든 젊은 후배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모두 화이팅입니다!
어쩌다 보니 오늘은 콜카타의 명소나 인도 경제에 대한 정보 대신, 지극히 개인적인 회고록이자 후배들을 위한 응원가가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24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이 일기 쓰기 작업 자체가 저에게는 그 어떤 여행보다 값진 치유의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자, 끈적이고 혼란스러웠지만 그만큼 강렬했던 콜카타에서의 7일간의 기록은 여기서 마칩니다. 내일은 드디어 국경을 넘어, 힌두교의 또 다른 성지이자 히말라야의 품에 안긴 **네팔(Nepal)**에서의 새로운 시장 조사(?)와 모험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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