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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도 지역전문가

55. 나만의 성역을 찾은날 창밖 세상은 혼돈에 빠지다. (통제가능한 것과 통제불가능한 것을 분리하기)

by 인도 전문가 2025. 10. 17.

2002년 3월5일, 화요일, 델리, 맑음

55.1 날씨가 또 다시 추워졌다.

델리의 날씨는 정말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다시 추워졌다. 지난주까지 그렇게 덥던 날씨가 갑자기 어제부터 싸늘해지더만 다시 밤에는 10도 안팍으로 떨어지고, 낮에도 25도를 넘지 않는다. 25도가 뭐가 춥냐고 하겠지만, 인도의 집 구조는 완전히 여름을 대비하여 만들어진 구조라서 밖이 25도이면 집안에는 15~20도 사이가 된다. 그럼 춥다. 특히 밤이 되면, 난방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춥다.

힌디학교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각 도시마다 제각기 자기의 특유의 날씨를 가지고 있지만, 델리는 고유의 날씨를 따로 가지고 있는게 없다고 한다.

예를 들면, 고아는 1년 내내 25~35도 이고, 켈커타는 어떻고, 각 도시마다 어떻고 하지만, 델리는 근처에 날씨가 어떻게 바뀌면 그거에 영향을 받는 그런 날씨라고 한다. , 마날리가 추워지면 델리도 추워지고, 아그라가 더워지면 같이 더워지고, 등등.

 

55.2 구자라트 폭동이 조금 수그러진거 같다.

매일 신문과 TV는 구자라트 폭동이 톱기사이다.

오늘 아침신문에 의하면 사망자수는 550명이 넘었다고 한다. 추정치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많은 숫자이다. 표지 사진도 상당히 참혹한 사진들로 채워지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폭동의 추세가 진정세로 돌아가고 있다는 기사 내용이다.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부러 폭동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거짓으로 진정세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긴 아직까지 구자라트지역으로의 모든 철도가 두절되어 있고, 도로도 차단되어 있다. 그리고 전화도 극히 제한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위험하다.

하지만 분명한건 델리는 안전해 보인다.

 

55.3 새로운 집에서 하루를 살은 소감

예상했던 바와 같이, 그리고 내가 원했던 그런 프라이버시가 있는 곳이다. 집이 붙어있다보니, 약간의 신경쓰이는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는 만족스러울 만큼 프라이버시가 있다.

다만 이 집의 부엌을 자유롭게 이용하기가 어려운게 조금 문제이다. 라면 끓여 먹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라면 아직 남아있는데

그 밖에는 아주 좋다. 어젯밤에 조금 추웠다고 하니깐 오늘 두꺼운 이불로 바꿔줬다.

어제 밤에는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잤다. 그래서 오늘 학교에서 좀 졸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조깅도 하고 아침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시간 계획을 짜야겠다.


보통 새집에 이사가면 짐정리도 해야 하고 첫 몇일은 정신이 없어야 하지만, 바로 적응하고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잠든 제가 20여년이 지나서 봐도 대견하네요. ㅎㅎㅎ

하긴 짐도 얼마 없었을테도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저만의 공간과 시간을 온전히 가졌기 때문에 너무 행복했던거로 기억합니다.

 

밖에서는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날씨는 예측 불가능하게 변덕을 부리지만, 적어도 이 방 안에서는 나의 의지대로 불을 켜고 책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작은 공간이 주는 안정감 덕분이었습니다. 집주인이 추웠다는 말 한마디에 두꺼운 이불을 가져다주는 작은 배려. 그것은 거대한 혼돈 속에서 제가 붙잡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질서였습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날의 경험을 통해 인도에서 살아남는 법을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혼돈을 바꾸려 하거나 그 안에서 완벽한 안정을 찾으려는 시도가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즉,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제불가능한 날씨와 통제불가능한 사회 속에서 통제가능한 나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방이든, 가정이든, 혹은 마음속의 신념이든, 외부의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닻을 내리는 것. 2002년 3월 5일, 저는 비로소 인도에서 저의 첫 번째 닻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성역 안에서, 저는 다시 세상을 마주할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