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구자라트 폭동과 힌두 민족주의, 그리고 나렌드라 모디
2002년 3월4일, 월요일, 델리, 맑음

54.1 드디어 지옥 같은 집을 탈출했다.
제목이 너무 거창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실제로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적었다.
오늘 드디어 이사를 한 것이다.
정말 힘든 2달이었다.
처음에 내가 그 집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수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고, 결코 한달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난 두 달을 버티고 나왔으니 그래도 그들에게 최소 할말은 있다. 하하하.
2달을 돌이켜 보면 정말 힘든 생활이었다.
그 동안 집에서 없어진 돈이 3,500루피가 넘는다. 돈도 돈이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전혀 없었던 2달이었다. 특히 아들놈은 정말 꼴 보기도 싫을 정도로 짜증나고, 진짜로 한대 팍 쳐주고 싶었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나마 아줌마하고의 관계는 괜찮은 편이었으나, 아저씨하고의 관계도 정말 싫다. 매일같이 어디 데리고 다니기 좋아해서 정말로 얼굴마담하는 짓도 이제 질렸고, 믿음이 안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작은 아들이 내방에서 내 물건을 자주 손대는 것을 봤는데, 정말 짜증난다. 심지어 그 집 강아지 마저도 나를 짜증나게 했다.
내 옷도 몇 개 잃어버렸다. 그 밖에 내 개인 물건 몇 개도 잃어먹어다. 정말 아까운 것은 시간이다. 거의 두달동안 집에서 공부를 하나도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인도의 전형적인 펀자비의 라이프스타일과 중산층의 생활을 몸으로 느꼈다.
이제 새로 이사한 이곳에서 앞으로 2달동안 정말 열심히 힌디어 공부도 하고 부족한 영어공부도 계속 하고 싶다.
54.2 새로 이사한 곳
여기는 학교에서 50M도 떨어지지 않는 매우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이다.
이 집의 반지하층은 병원이고, 1.5층에 주인집이 있는데, 병원 의사네 집이다. 1.5층에 출구가 2개 있는데, 하나는 메인이고, 하나는 내방으로 통하는 출구이다. 그리고 내방에 화장실이 따로 있어서 개인 프라이버시가 있는 곳이다.
더블 침대와, 책상, 의자, 캐비닛, 옷걸이, 티비, 전화 등이 설치되어 있다.
매일 아침 저녁에 차 혹읂 커피가 준다고 했고, 이 집에서 먹는 미네랄 워터를 같이 먹을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씩 부엌을 이용해도 괜찮다고 했다. 청소는 기본 제공이고, 빨래의 경우는 따로 빨래부를 부르기로 했다.
이 집에는 항상 상주하는 하인이 하나 있긴 한데, 내가 부려먹기는 어려울거 같다. 하지만 만족스럽다.
아 그리고, 문제가 하나 있는데 이 동네에는 사이버카페가 없다.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마침 이 동네 마을회관에 다음주인가 사이버카페가 생긴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일주일정도만 걸어다니자.
54.3 구자라트 폭동
지난 주 목요일 시작됐던 구자라트주의 폭동이 좀처럼 진압이 되지 않고, 타지역으로 확산추세에 있는 모양이다. 모든 신문과 티비뉴스에 구자라트 폭동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오늘 아침 신문에 의하면 이미 사망자 수가 500을 넘었다고 하니, 내일은 600~700명이 금방 넘어갈 거 같다.
이번 폭동은 무슬림과 힌두간에 싸움으로 시작됐으며, 현재 2개의 종교단체끼리 마을단위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매 전투때마다 수십명씩 죽고, 계속 복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구자라트 주정부의 통제력은 상실되어 있으며, 이미 전국에 비상이 선포되어, 주요지역에 군대가 주둔하기 시작했다. 델리는 무슬림이 아주 적고, 대부분 힌두라서, 그나마 안전해 보인다.
오늘 이사 온 집 아저씨도 이제야 아는지 나더러 멀리 다니지 말라고 한다.
비슷한 하숙의 연장이긴 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의 하숙으로 옮긴 날이었네요.
제 낡은 일기장의 첫 문장은 거친 단어로 시작됩니다. "드디어 지옥 같은 집을 탈출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그때의 해방감과 지난 두 달간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단번에 느껴집니다.
그날은 제 인도 생활의 중요한 분기점이었습니다. 마침내 저만의 공간을 찾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던 날이니까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개인적인 평화를 되찾은 바로 그날, 인도는 걷잡을 수 없는 폭력의 불길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3일전 구자라트 폭동에 대해서 포스팅 참고하세요. https://gshin.tistory.com/66)
구자라트 폭동 혹은 구자라르 대학살에 대한 기고문 참고
https://www.genocidewatch.com/single-post/the-2002-gujarat-genocidal-massacres
20여 년이 지난 지금, 저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날의 폭동이 단순한 종교 갈등이 아니라, 오늘날 인도를 지배하는 거대한 정치 이념의 뿌리이자, 나렌드라 모디라는 강력한 리더를 탄생시킨 거대한 서막이었음을 말입니다.
1. '힌두트바(Hindutva)': 단순한 종교가 아닌 정치 이념
우리가 '힌두 극단주의'라고 부르는 현상의 뿌리에는 '힌두트바', 즉 힌두 민족주의라는 정치 이념이 있습니다. 이것은 힌두교라는 종교 자체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 힌두교 (Hinduism):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다신교적이고 철학적인 종교.
- 힌두트바 (Hindutva): **"인도의 정체성은 힌두 문화와 가치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정치 이념입니다. 이들에게 인도는 모든 종교가 동등한 '세속 국가'가 아니라, '힌두 국가(Hindu Rashtra)'가 되어야 할 땅입니다. 무슬림이나 기독교인 등 다른 종교인들은 이 힌두 중심의 문화에 동화되어야 할 '외부인'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좀더 자세한 힌두트바에 대한 설명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en.wikipedia.org/wiki/Hindutva )
2. 2002년 구자라트: '힌두트바'의 시험대이자 성공 모델
사용자분의 통찰처럼, 2002년 구자라트 폭동은 이 힌두트바 이념이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결정적인 시험대였습니다.
- 배경: 힌두 순례자들이 탄 열차가 무슬림에 의해 불탔다는 '고드라 사건'을 계기로, 구자라트 전역에서 무슬림에 대한 조직적인 보복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 결과: 당시 구자라트 주 총리였던 나렌드라 모디는 이 폭동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사건 이후 그는 **'힌두의 이익을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게 됩니다. 그는 폭동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인도 정치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힌두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노선이 선거에서 통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 치유되지 않은 상처: 폭동의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힌두교도와 무슬림 공동체 사이의 불신은 더욱 깊어졌고, 힌두 민족주의는 구자라트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힘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3. 모디의 부상: '구자라트 모델'의 전국화
구자라트에서의 성공은 나렌드라 모디가 전국적인 지도자로 부상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 이미지를 결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힌두의 수호자: 그의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강력한 이념적 기반입니다.
- 효율적인 행정가: '구자라트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경제 발전과 인프라 개발 능력을 내세워 중산층과 기업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 두 가지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그는 2014년, 마침내 인도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총리가 된 이후, 힌두트바 이념은 더 이상 변방의 목소리가 아닌, 인도의 국가 정책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4. 힌두트바의 현재: 정책으로 나타나는 이념
오늘날 인도에서 벌어지는 많은 논쟁적인 사건들은 모두 이 힌두트바 이념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 아요디아 '람 사원' 건설: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수십 년 숙원 사업이었던, 무슬림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힌두 사원을 건설하는 것을 실현시켰습니다.
- 카슈미르 특별지위 박탈(헌법 370조 폐지): 인도 유일의 무슬림 다수 주였던 잠무-카슈미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연방 직할령으로 편입시킨 조치입니다.
- 시민권 개정법(CAA): 주변국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불법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되, 무슬림만 명시적으로 배제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 도시 이름 변경: '알라하바드'를 '프라야그라지'로 바꾸는 등, 이슬람(무굴 제국) 시대의 색채가 묻어있는 도시들의 이름을 힌두식으로 바꾸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2002년 델리의 상점들이 문을 닫게 만들었던 그 폭동의 불길은 결코 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불씨는 힌두 민족주의라는 거대한 정치적 에너지로 타올라, 인도의 정체성 자체를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힌두트바 라는 영화가 나와서 흥행했을 정도로 현대 인도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17년간 이곳에 살면서 제가 목격한 것은, 인도의 건국 이념이었던 '다양성 속의 통합(Unity in Diversity)'과 '세속주의'가, '힌두라는 이름 아래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이념의 도전을 받는 과정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02년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정치적으로 이용되며 더욱 강화되어 간 것이 매우 안타깝고, 오늘날 인도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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