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1일, 금요일, 델리, 흐림

51.1 아하~ 오늘 삼일절이였구나!
정말 몰랐다. 지금 일기 쓰려고 날짜 적다가 알았다.
오늘 하루도 바쁘게 보내느라 삼일절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도 못했다. 한국에는 샌드위치데이라서 많이들 쉬겠구나… 한국의 휴일 개념이 거의 없어지려고 하고 있다. 하긴 그럴만도 하지…
(당시에는 토요일도 일하는 날이라서 금요일 공휴일을 샌드위치데이로 여겼답니다)
51.2 구자라트에서 폭동 발생
어제인지, 그저께인지, 잘 모르겠는데, 구자라트주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약 250여명이 죽었다고 들었다. 영국문화원 저녁수업 들으러 갔는데, 경계가 너무 삼엄하여서 물어 봤더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집의 텔레비전에는 뉴스가 안 나온다. 드라마만 나온다. 신문도 안 본다. 그러다 보니 세상소식이 깜깜하다.
영국문화원에 가기전에 코넛플레이스랑, 파하르간지에 갔다왔는데,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코넛플레이스(델리의 명동)에도 거의 문 열은 상점이 없으며, 몇 개 열은 집이 있었는데, 머리에 흰띠를 두른 청년들이 뛰어다니면서 그 가게에 뭐라 소리지른다.
심지어 우리 동네 말비야나가르에도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오늘 우리동네 싸이버카페의 2군데가 전부다 네트워크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다운되어 버려 인터넷도 할 수 없었다.
영국문화원에서 불안한 이야기가 더 들린다. 폭동조짐이 델리에도 보인다는 둥…
조금 불안하다. 12월에는 국회의사당에서, 지난달에는 켈커타에서 테러가 일어나더만, 자꾸 왜 이러는 거야.
집에 돌아오니, 이 집사람들은 전혀 태평세월이다. 폭동이야기를 물어봤더니, 전혀 모르고 있다. 동네 장사꾼들도 다 아는 이야기인데…
나라도 당분간 몸 조심해야 겠다.

51.3 자꾸 몸이 간지럽다.
오늘 이상하다. 온 몸이 자꾸 간지럽다. 아까 샤워하고 일좀 할려고 하는데, 온몸이 간지럽다. 뭘 잘못 먹었을까? 잘못 먹은 거 하나도 없는데… 벌레에 물린것도 없고, 알르레기 증세를 일으킬 만한 것도 주위에 없는데, 이상하다. 지금도 많이 간지럽다. 안 긁을 라고 참고 있다. 인도의 풍토병일까?
20여 년 전 일기장으로 돌아본 인도의 깊은 상처
2002년 3월 1일, 제 낡은 일기장에는 한국의 공휴일인 삼일절조차 잊을 만큼 분주했던 하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평범했던 하루는 저녁이 되면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변해갔습니다.
"영국문화원 저녁수업 들으러 갔는데, 경계가 너무 삼엄하여서 물어 봤더니... 구자라트주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약 250여명이 죽었다고 들었다... 코넛플레이스(델리의 명동)에도 거의 문 열은 상점이 없으며, 몇 개 열은 집이 있었는데, 머리에 흰띠를 두른 청년들이 뛰어다니면서 그 가게에 뭐라 소리지른다... 폭동조짐이 델리에도 보인다는 둥… 조금 불안하다."
그때의 저는 세상 소식에 깜깜했습니다. 집에 있는 TV는 드라마만 나왔고, 신문도 보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델리 시내의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 이유를 영문도 모른 채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저는 비로소 그날 델리를 감쌌던 공포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는지, 그리고 이후 인도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무엇이 불을 지폈는가: 고드라 열차 방화 사건
모든 비극에는 발화점이 있습니다. 2002년 구자라트 폭동의 시작은 '고드라(Godhra) 열차 방화 사건'이었습니다.
2002년 2월 27일, 힌두교 성지 '아요디아(Ayodhya)'에서 돌아오던 힌두 순례자(주로 힌두 민족주의 단체 VHP 관련자들)들이 탄 열차가 구자라트 주의 고드라 역 근처에서 무슬림 군중의 공격을 받아 불에 탔습니다. 이 사건으로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한 59명의 힌두 순례자가 사망했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은 하룻밤 사이에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억눌려 있던 힌두-무슬림 간의 갈등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2. 핏빛 보복: 구자라트 대학살
고드라 사건 다음 날부터, 구자라트 주 전역에서는 힌두 극우 단체를 중심으로 무슬림에 대한 조직적인 보복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며칠간 이어진 폭동으로 공식적으로는 1,000여 명(비공식적으로는 2,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 대부분은 무슬림이었습니다. 수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했고, 수만 채의 집과 가게가 불에 탔습니다.
당시 구자라트 주 총리였던 현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의 주 정부는 이 폭동을 막지 못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방조했다는 심각한 비판을 국내외로부터 받았습니다. 경찰이 힌두 폭도들을 제지하지 않고 지켜보거나 심지어 도왔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왔고, 이 사건은 그의 정치 경력에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무슬림쪽 가해자는 엄중하게 처벌받았지만, 힌두쪽 가해자는 거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습니다.(물론 나중에 대법원이 개입하며 일부 지연된정의가 실현되기도 했습니다만, 수많은 다른 힌두쪽 가해자는 무혐의로 종결되었습니다)

3. 2025년, 그 상처는 아물었는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도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구자라트는 '발전의 모델'로 불립니다. 그렇다면 그날의 상처는 모두 아물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2002년의 비극은 오늘날 인도 사회에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 정치적 양극화: 이 사건은 인도 정치를 극단적으로 양극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렌드라 모디는 이 사건을 통해 '힌두의 보호자'라는 이미지를 얻으며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다졌고, 이는 훗날 그가 총리가 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이 사건을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실패'의 상징으로 여기며, 힌두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 깊어진 종교 갈등: 폭동 이후, 구자라트의 힌두교도와 무슬림 공동체 사이에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불신의 벽이 생겼습니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거주지로 모여들며 사회적으로 고립되었고, 이 보이지 않는 분리의 벽은 인도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 폭동의 양상 변화: 그렇다면 지금도 2002년과 같은 대규모 폭동을 조심해야 할까요? 다행히 그럴 가능성은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폭력의 양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SNS를 통해 특정 소문이나 혐오 발언이 순식간에 퍼지면서, **지역 단위의 작은 충돌(Localized flare-ups)**이 종교 축제 기간이나 사소한 다툼을 계기로 훨씬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전쟁 대신, 곳곳에서 작은 게릴라전이 벌어지는 셈입니다.
2002년 3월 1일, 아무것도 모르던 스물 몇 살의 저는 그저 델리의 굳게 닫힌 상점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20여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저는 그날의 셔터가 단순한 휴업이 아니라, 한 나라의 깊은 상처와 분열을 상징하는 것이었음을 압니다.
그 상처는 여전히 인도 사회의 가장 아픈 곳에 남아, 언제든 다시 덧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인도의 화려한 성장 뒤에 가려진 이면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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