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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도 지역전문가

50. 두 개의 은행, 두 개의 인도, 과거와 현재의 공존

by 인도 전문가 2025. 10. 14.

2002년 2월28일, 목요일, 델리, 맑음

50.1 드디어 은행계좌를 만들다.

인도에서 그 어렵다고 소문난 은행계좌를 드디어 오픈했다.

어제 STATE BANK OF INDIA의 사우트익스텐션 지점에서 준 서류에 양식작성하고, 이것저것 복사해서 준비해가지고 아침에 갔다. 그런데, 또 뭐가 그리 바쁜지, 내가 보기에는 하나도 안바쁜거 같은데, 자꾸 다른사람에게 또 가란다. 그 사람한테 갔더니, 내일 다시 오란다. 정말 사람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어제 써먹은 내일오면 해준다를 오늘 또 써먹고 있다. 내가 어디 바본가 다시 릭크노명함을 썼다. 그랬더니, 5분만 기다리면 해준단다. 30분을 기다렸다. 서류를 보더니, 거주자등록증의 뒷면까지 다 복사해가지고 다시 오란다. 그럼 만들어 준단다. 그리고 atm카드는 한달뒤에 나온다면서, 일단 계좌를 먼저 만들고, atm서류는 나중에 작성하자고 한다. 복사하러 다시 밖에 나왔다. 짜증이 난다. 여기서 계좌 설령 만들었다고 쳐도, 나중에 돈 찾고, 관리하는게 정말 힘이 들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복사가게를 찾으러 걸어가다가 옆에 홍콩은행(HSBC)이 보였다. 깨끗했다. 그냥 발걸음이 그리로 옮겨졌다. 거기에 들어가니, 아가씨가 먼저 다가와서 무었을 할꺼냐고 묻길래, 통장 만들려고 한다고 했더니, 자리까지 만들어 주면서 일일히 설명을 해주면서 그 자리에서 계좌를 오픈해 주었다. 시간은 불과 1시간도 안 걸렸다. ATM카드서류도 작성 다했고, 인터넷뱅크도 오픈했다. 일주일 뒤에 ATM카드가 나오니깐 배달해줄까요, 아니면 방문할래요? 해서 내가 다음주에 직접 온다고 했다. 일이 너무 쉽게 끝났다. 서류도 별로 필요하지도 않다. 복사도 은행 직원이 다 해준다.

 

이런,,, 그 동안 내가 통장 만들려고 거의 2~3일동안 인도은행을 찾아다니걸 생각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억울하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했다. 와~ 이건,, 내가 바보가 된거 같기도 하고, 도대체 이게 뭐야?? 

어쨌든 나중에 혹시 인도에서 통장 만드실 분,,, 홍콩은행으로 가세요. 그 자리에서 다 해결됩니다.

인도 지점 답게 인도 국기를 활용한 광고네요. 좋습니다.

 


2002년, 한 골목에서 마주한 인도의 과거와 현재

 

2002년 2월 28일, 제 낡은 일기장에는 며칠간의 사투 끝에 마침내 은행 계좌를 만들었던 날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록은 성취감보다는 깊은 허탈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그 동안 내가 통장 만들려고 거의 2~3일동안 인도은행을 찾아다니걸 생각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억울하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했다. 와~ 이건,, 내가 바보가 된거 같기도 하고, 도대체 이게 뭐야??"

그날 저는 인도의 심장부, 델리의 한복판에서 문자 그대로 두 개의 다른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헤맨 것은 단순히 델리의 길이 아니라, 인도의 서로 다른 두 시대 속이었다는 것을.

전에 읽은 책입니다. 금번 포스트와 관련이 있고,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인도의 다양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추천작입니다.

1. 과거의 미로: 국영은행에서의 사투

여행에서 만난 국영은행(SBI) 지점장님의 명함까지 손에 쥔 저는, 이번에야말로 계좌를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여전히 불친절한 직원들은 저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바빴고, "내일 오라"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했습니다.

결국 비장의 카드인 지점장님의 명함을 꺼내자, 상황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모두가 분주해지며 저를 2층으로 안내했고, 차를 대접하며 친절을 베풀었죠. 하지만 그 친절의 끝은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서류 준비해서 내일 다시 오세요"였습니다. 인맥이라는 열쇠가 없으면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그리고 그 열쇠가 있어도 절차는 한없이 더디고 복잡한 곳. 그곳이 바로 인도의 과거 시스템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고객 서비스'라는 개념 대신 '권위'가 있었고, '효율성' 대신 '절차'가 있었으며, '책임감' 대신 '떠넘기기'가 있었습니다.

2. 현재로의 탈출: 외국계 은행에서의 신세계

짜증과 피로에 지쳐 국영은행을 나선 저는, 바로 옆에 있는 깨끗한 홍콩은행(HSBC) 건물에 홀린 듯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는 완전히 다른 인도를 만났습니다.

"아가씨가 먼저 다가와서 무었을 할꺼냐고 묻길래, 통장 만들려고 한다고 했더니, 자리까지 만들어 주면서 일일히 설명을 해주면서 그 자리에서 계좌를 오픈해 주었다. 시간은 불과 1시간도 안 걸렸다."

직원이 먼저 다가와 용무를 물었고, 편안한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처리해주었습니다. 서류 복사도 직원이 알아서 했고, ATM 카드와 인터넷 뱅킹 신청까지 한자리에서 끝났습니다. 며칠간 저를 괴롭혔던 모든 문제가 단 1시간 만에 해결되는 순간, 저는 억울함을 넘어 깊은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두 은행의 서비스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20세기의 인도와 21세기의 인도가 공존하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3. 인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땅

그날의 경험은 저에게 인도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인도는 어느 한 가지 모습으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시대가 중첩된 다층적인 사회라는 것입니다.

  • 교통: 델리의 최첨단 지하철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바로 그 아래, 여전히 릭샤와 소달구지가 뒤엉켜 달립니다.
  • 상업: 명품 브랜드가 가득한 초현대식 쇼핑몰 바로 옆 골목에는, 수백 년 된 방식 그대로 물건을 파는 재래시장이 펼쳐집니다.
  • 결제: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결제 시스템(UPI)이 보편화되었지만, 여전히 길거리 상인에게는 현금 뭉치가 더 익숙합니다.

이처럼 인도의 매력이자 가장 큰 혼란은, 과거의 시스템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스템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나란히 공존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렇게 당시 하나씩 하나씩 몸소 인도를 배워 나갑니다. 지금은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농협까지 지점으로 다 들어와 있어서 한국인이 인도에 계좌 만드는일은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우리나라 은행이 없었지요.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도의 국영은행들도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기관이나 오래된 시스템 속에서는 2002년의 제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답답함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날의 허탈감은, 인도를 하나의 잣대로 이해하려 했던 저의 어리석음에 대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인도를 여행한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 사이를 오가며 그 간극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공존이야말로, 인도를 끝없이 역동적으로 만드는 진짜 에너지의 원천이 아닐까요?

제가 너무 긍정적으로만 보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