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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도 지역전문가

47. 인도에서 스키를? 2002년 아울리(Auli)에서의 새하얀 기억

by 인도 전문가 2025. 10. 13.

2002년 2월25일, 월요일, 아우리, 맑음

 

47.1 진짜 스키 같은 스키를 타다. 인도에서!!!

이곳 아우리는 스키장밖에 없는 곳이다. 물론 여름이나 다른 시즌에는 다른 용도로 쓰이지만, 겨울에는 스키장만 달랑 하나 있는 마을이다. 거주자도 없고, 가게도 없다. 내가 숙박하는 그 호텔과, GMVN에서 운영하는 정말 꾸진 GUEST HOUSE가 전부다. 오직 스키를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른쪽 보이는 저 집이 Cliff Top Club이라는 얼떨결에 사람들 따라 갔다가 숙박한 곳입니다.

 

이곳에는 약1KM정도 되는 체어리프트와, 500M정도의 스키리프트(다리사이에 거치대를 끼고 스키타고 올라가는 리프트)가 있다. 각각 아래쪽 슬로프와, 위쪽 슬로프에 설치되어 있고, 공교롭게도 둘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맨아래서 맨위로 가려면 중간에 약 400M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설질(눈의 콘디션)은 너무 좋아서 타기 안 좋다. 여기는 매일 밤에 새로운 눈이 10CM이상씩 내린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아침에는 푹푹 발이 빠지는 버진스노우로 스키 전문가 아니면, ,중급자에게는 타기 매우 어려운 설질이다. 하지만 고급자에게는 이만한 스키장도 없다. 문제는 리프트인데, 이게 자주 운행하지 않는다. 한번 탈려면 30분씩 기다려야 한다. 스키 타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계속 운행하지 않고, 사람 좀 모이면 그때 운행한다. , 모든 사람이 같이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는 것 기다렸다가 다시 같이 타고 올라간다. 그러니 빨리 타고 내려오면 밑에서 한참 기다려야 한다. , 다음 문제는 너무 일찍 끝난다. 오후 3시가 되면 그날의 리프트 운행이 끝나 버린다.

저기 보이는게 체어리프트입니다. 돈내고 몇번씩 타고 왔다갔다 했습니다.

 

또 워낙 고지대(해발 3,000미터 이상임)이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쉽게 지친다. 그리고, 머리가 항상 아프다.(진짜 하루종일 두통과 싸웠다.) 그러다 보니, 초심자에게는 스키를 즐기기 전에 먼저 지쳐버릴 것 같다.

슬로프 또한 최소 중상급자 이상의 슬로프이다. 가파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슬로프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데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그런 눈이 엄청나게 덮혀 있는 언덕이다 보니, 초보자에게는 절대 권할 수 없다. 특히 눈이 다져진 그런 슬로프가 아니라 대부분 버진스노우다.(다져지지 않은, 발에 힘 잘못주면 그냥 푸~욱 박혀버리는 눈입니다)

하지만 상급자에게는 좋은 코스이다.

따로 정해진 슬로프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구 마구 다닐수 있습니다.

? 나는 다행히 최소 중,상급자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탔다.

 

47.2 사교모임에 참가하다.

저녁에 호텔에서 캠프파이어가 있었다.

호텔 앞에 둥글게 눈을 삽으로 타 파내어서 공간을 만든 다음에 가운데 캠프파이어를 열었다. 호텔 숙박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저녁식사와 음악과 약간의 술을 나누었다. 여기에 외국인은 나 혼자였고, 전부다 인도인인데, 10여명이 참가 했다. 그 중에 몇 명을 사귀게 되었는데, 한명이 STATE BANK OF INDIA의 록크노(우타르프라데쉬 주도) 지점의 지점장이다.

그 사람하고 지난주에 은행계좌 만들려다가 못만들 이야기를 포함해서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내일 그 사람도 데라둔으로 간다면서 같이 차를 타고 가자고 한다.(데라둔은 릭쉬케쉬를 거쳐서 간다.) 땡잡았다. 그렇치 않아도 그 11시간 버스를 타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한 걱정이 있었는데, 정말 잘됐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같이 가기로 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와이프랑 다른 업체에서 풀코스로 접대 관광을 온 것이었다. 내일 데라둔에서의 미팅은 그 업체와의 미팅이라고 한다. 역시 인도는 뇌물이 중요하긴 중요하다는 것을 또 느꼈다.


자, 정리해보겠습니다. 인도에서 스키를, 정말로 제대로 된 스키를 탈 수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 집중하겠습니다.

 

2002년 2월 25일, 제 낡은 일기장에는 히말라야의 고요한 설원에서 보낸 하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할 케이블카를 타고 얼떨결에 머물게 된 '아울리(Auli)'. 그곳은 오직 스키만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과 단절된 듯한 마을이었습니다.

"이곳 아우리는 스키장밖에 없는 곳이다... 거주자도 없고, 가게도 없다... 오직 스키를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의 경험은 인도에 대한 저의 또 다른 편견을 깨주었습니다. 혼돈과 더위의 나라로만 생각했던 인도에서, 저는 생애 가장 인상적인 '진짜 스키'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1.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스키장

아울리의 스키장은 모든 면에서 극단적이었습니다.

  • 최고의 설질, 최악의 조건: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이곳에는 매일 밤 10cm가 넘는 신설(新雪)이 내렸습니다. 덕분에 슬로프는 온통 아무도 밟지 않은 자연설, 즉 '버진 스노우(Virgin Snow)'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스키 상급자에게는 꿈의 무대였지만, 푹푹 빠지는 눈 때문에 초중급자에게는 타기 매우 어려운, 그야말로 전문가를 위한 설질이었습니다.
  • 광활한 슬로프, 비효율적인 리프트: 정해진 슬로프가 따로 없이, 눈 덮인 거대한 언덕 전체가 나의 슬로프가 되는 자유로움은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리프트는 그 자유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모여야만 한 번씩 운행하는 탓에, 한 번 타려면 30분씩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게다가 오후 3시면 운행이 끝나 버리는, 세상에서 가장 일찍 퇴근하는 리프트였죠.
  • 경이로운 풍경, 고통스러운 신체: 고산지대이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하루 종일 지끈거리는 두통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감내할 만큼 눈앞에 펼쳐진 히말라야 설산의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다행히 저는 중상급 스키어였기에,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짜릿한 활강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다져진 인공 눈 위를 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대자연과 하나 되어 미끄러지는 경험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난 Auli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멀리 보이는 난다데비(인도의 최고봉)와 저 사진속의 버진스노우와 매일 같이 쌓이는 신설은 분명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이겠지요. 하지만 너무 너무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라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은 분명하고, 사람이 많지 않으니 호텔이나 시설이 나아지기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구글맵 위치를 공유합니다. 구경 한번 해보세요.

https://maps.app.goo.gl/V2uRningeu5bPatn7

 

2. 캠프파이어, 그리고 뜻밖의 인연

저녁이 되자 호텔에서는 캠프파이어가 열렸습니다. 눈을 파내 만든 공간에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투숙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그곳의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저는 자연스럽게 인도인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중 한 명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인도 국영은행(State Bank of India)'의 러크나우 지점장이었습니다.

저는 불과 며칠 전, 델리에서 은행 계좌 하나를 만들려고 하루 종일 뺑뺑이를 돌았던 저의 황당한 경험담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제 이야기에 웃으며 공감해주었고, 우리는 금세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저에게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역시 다음 날 저와 같은 방향인 '데라둔'으로 간다며, 자신의 차에 동행할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 11시간의 끔찍한 버스 여정을 다시 겪을 생각에 막막했던 저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 같은 제안이었죠. "땡잡았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3. 인도의 비즈니스: '접대 관광'이라는 힌트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의 이번 여행이 개인적인 휴가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다른 업체의 '풀코스 접대 관광'을 받고 있었고, 데라둔에서의 미팅 역시 그 업체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인도 비즈니스의 또 다른 단면을 엿보았습니다. 계약이나 실무 능력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관계'와 '성의 표시'라는 것. 물론 이것을 단순히 '뇌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비즈니스를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윤활유'가 인도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작동하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20여 년 전 아울리에서의 하루는 저에게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인도에서도 진짜 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놀라움, 고산지대의 아름다움과 고통, 그리고 불편함 끝에 찾아온 따뜻한 인연과 행운. 그리고 그 인연을 통해 엿본 인도의 보이지 않는 비즈니스 문화까지.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도 여행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그 예측 불가능한 과정 속에서 훨씬 더 값진 경험과 사람, 그리고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