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23일, 토요일, 릭쉬케쉬, 비

45.1 이상한 일과로 릭쉬케쉬의 일정을 시작하다.
아침에 릭쉬케쉬에 도착해서 뭔가를 하긴 해야 겠는데, 너무 이른 아침이라서 문열은 식당도 없고, 그렇다고 갈데도 없고, 똥은 마렵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까운 호텔을 갔다. 마침 가보니, 릭쉬케쉬에서 제일 좋은 호텔이다. 너무 비싸서 그냥 나올라고 했는데, 호텔매니저가 지금 아침부터 첵크인 해도 내일 12시까지 하루요금만 받겠다고 꼬시길래, 결국 여기서 숙박하기로 했다. 사실 아침 6시30분쯤에 갈데도 없었다. 그리고 원래 그렇게 일찍 첵크인 하면 추가요금이 붙는게 정상이다.
방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정말 새벽버스가 너무 다이나믹했다.
결국 잠이 들어버려서 12시까지 잠을 잤다. 이렇게 릭쉬케쉬의 하루는 이상하게 시작됐다.
45.2 릭쉬케쉬에서는 고기를 못 먹는다.
오늘 아침에 뭘 먹을까 하고 메뉴를 봤는데, 전부다 Vegetable이다. 그래서 웨이터에게 논베지 메뉴를 달라고 했더니, 하는 말이 “이곳 릭쉬케쉬는 극도로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다른 식당도 그렇고, 엄하게 베지터블만 제공되고 있다.” 라고 한다. 결국에, 식빵이랑, 차로 아침을 떼웠다. 솔직히 그 웨이터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그래도 이 동네에서 최고 좋은 호텔인데,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여기 오는 손님들의 상당수가 외국인인데, 베지터블만 제공된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후에 논베지를 먹기 위해서, 뭔가 치킨이든 정 없으면 계란이라도 좋다 생각하고 릭쉬케쉬를 다 뒤지고 다녔다.
오 마이 갓… (이 말은 내가 인도 와서 입에 붙은 말이다. 일상이 오마이갓이다)
정말 릭쉬케쉬에는 논베지 식당이 없다. 전부다 베지터블이다. 이럴 수가….
결국 시장골목 길거리에서 계란파는 아저씨가 있어서 삶은 계란이랑, 에그옴릿을 먹었다. 정말 호텔식당이나, 그럴싸하게 생긴 (정상적인) 식당은 절대로 베지테리안 식당이다.
여기는 진짜로 강가(겐지즈강)의 매우 중요한 곳으로 정말 신성한 곳이다. 아침 저녁으로 종소리도 들리고, 수 많은 수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부제: 2002년, 치킨 한 조각을 찾아 헤맸던 나의 황당한 하루
2002년 2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저는 밤샘 야간 버스의 피로를 잔뜩 짊어진 채 '요가의 성지' 리시케시에 도착했습니다. 낡은 일기장에는 그때의 혼란스러웠던 하루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침에 뭘 먹을까 하고 메뉴를 봤는데, 전부다 Vegetable이다... 웨이터에게 논베지 메뉴를 달라고 했더니, 하는 말이 “이곳 리시케쉬는 극도로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다른 식당도 그렇고, 엄하게 베지터블만 제공되고 있다.” 라고 한다... 오 마이 갓… 정말 리시케쉬에는 논베지 식당이 없다. 전부다 베지터블이다."
밤새 겪은 황당무계한 버스 여정 끝에 겨우 짐을 풀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호텔 식당 메뉴판을 펼쳤던 20여 년 전의 저. 닭고기든 양고기든, 하다못해 계란이라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메뉴판은 온통 푸른색이었습니다. 웨이터의 말을 믿지 못하고, 그날 오후 내내 저는 치킨 한 조각을 찾아 리시케시의 골목골목을 하이에나처럼 헤맸습니다.
결론은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그럴싸한 식당이란 식당은 모두 '순수 채식(Shudh Shakahari)' 간판을 내걸고 있었고, 저는 결국 시장 골목에서 파는 삶은 계란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습니다. 그날 저는 몸소 깨달았습니다. 리시케시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원과도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1. 왜 리시케시에는 고기가 없을까?
리시케시와 그 이웃 도시 하리드와르는 힌두교도들에게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입니다. 성스러운 갠지스 강('강가')이 히말라야 산맥을 벗어나 평야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기 때문이죠.
- 법적인 금지: 이곳은 우타라칸드 주 정부에 의해 공식적인 **'성지(Holy Town)'**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도시 경계 안에서는 주류(Alcohol)와 육류(Non-vegetarian food)의 판매 및 소비가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됩니다. 호텔 웨이터의 말은 과장이 아니라, 100% 사실이었던 겁니다.
- 영적인 분위기: 이런 법적인 규제를 넘어, 리시케시는 도시 전체에 깊은 영적인 분위기가 흐릅니다. 아침저녁으로 울려 퍼지는 사원의 종소리, 강가 강변에서 명상하는 수행자들('사두'), 그리고 요가 아쉬람을 가득 메운 세계 각국의 구도자들. 이들에게 육식은 영적인 수행을 방해하는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에, 채식은 당연한 삶의 방식입니다.
2. 2025년 현재, 리시케시는 어떻게 변했을까?
20여 년이 지난 지금, 리시케시는 세계적인 요가와 웰니스 관광지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비틀즈가 머물렀던 아쉬람은 명소가 되었고, 강변에는 힙한 카페들이 즐비하죠. 그렇다면 지금은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요?
- 여전한 원칙: 아니요,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금지입니다. 락쉬만 줄라(Lakshman Jhula)나 람 줄라(Ram Jhula) 같은 핵심 관광 지역의 모든 식당과 호텔은 지금도 엄격하게 채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 작은 변화의 바람: 하지만 도시가 팽창하고 관광객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약간의 '회색지대'가 생겨났습니다. 리시케시의 행정 구역 경계선 바로 바깥에 있는 일부 지역이나, 외곽의 대형 호텔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육류 메뉴를 제공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또한, 로컬시장에서는 여전히 계란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 '채식의 진화': 더 큰 변화는 채식 메뉴 자체의 발전입니다. 2002년에는 단순한 인도식 채식 요리가 전부였다면, 지금은 비건 피자, 두부 스테이크, 퀴노아 샐러드, 콤부차 등 세계 각국의 여행자 입맛에 맞춘 세련되고 맛있는 채식 요리들이 넘쳐납니다. 이제는 굳이 고기를 찾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변모했죠.
2002년, 고기 한 점을 찾아 헤맸던 저의 황당한 하루는, 결국 이 도시의 신성함을 온몸으로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단순히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불편함을 넘어, 한 공동체의 깊은 믿음과 생활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중요한 경험이었죠.
혹시 리시케시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면, 며칠간은 육식에 대한 기대를 잠시 내려놓아 보세요. 대신 이 도시가 선사하는 건강하고 맛있는 채식의 세계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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