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20일, 수요일, 델리, 맑음
42.1 델리의 봄은 없다.
이번주 월요일부터 갑자기 진짜로 갑자기 더워졌다.
온도가 낮에는 30도까지 올라가고, 밤에도 15~20도 정도를 유지한다. 요즘 낮에는 긴팔옷 하나만 입어도 덥다.
지난주만 해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했고, 낮에도 그늘에서는 써늘해서 긴팔에다가 쉐타를 입고 다녔는데 갑자기 날씨가 여름이 됐다.
내가 알기로는 약 1달정도 봄이 있다고 했는데, 그냥 여름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다른 인도인에게 물어봤더니, 이번주부터 봄 같다고 한다. 아하~ 즉, 인도에서 인도인들이 말하는 봄은 우리나라의 초여름이랑 비슷한 정도의 날씨를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같은 봄이 절대 아니다.
추가로, 인도에서 여름이란, 기온이 40도이상으로 올라가는 그런 엄청나게 더운 기간을 여름이라고 하며, 기간은 4월말부터 6월말까지라고 한다.
즉, 인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봄은 없다.
단, 북부지방으로 가면 우리나라 봄 같은 봄이 있다.

인도의 북부지방에 가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사계절이 있고, 더 올라가면 더 혹독한 겨울이 있습니다만,, 저는 델리 기준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저 위의 일기를 쓸때는 인도의 진짜 여름을 아직 겪기 전이었지요. 조금더 연재를 이어가다 보면 점점 더 더위에 지쳐가는 모습을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한국인의 눈으로 본 델리의 진짜 사계절
저는 오래 살다 보니 델리의 예측 불가능한 계절의 리듬을 그래도 예측가능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4계절을 기준으로 설명하기엔 참 애매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1. 뼛속까지 파고드는 겨울 (12월 ~ 2월 초) 델리의 겨울은 생각보다 훨씬 춥습니다. 기온 자체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지만, 모든 집에 난방 시설이 없는 것이 치명적입니다. 대리석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 외풍이 드는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찬 공기는 실내를 실외보다 더 춥게 만듭니다. 밤새 추위에 떨고 나면, 신기하게도 해가 뜬 낮에도 온몸에 한기가 가시지 않습니다.
2. '어? 안 춥네?' - 사라진 봄 (2월 중순) 그러다 2월 중순이 되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뀝니다. "어? 이제 좀 살만하네?"라고 느끼는 완벽한 날씨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이 행복은 일주일, 길어야 2주를 넘기지 못합니다. 바로 이 시기가 델리가 우리에게 허락하는 유일한 '봄의 환상'입니다.
3. '한국의 여름'이라 불리는 인도의 봄 (2월 말 ~ 4월 초) 일기장에 썼던 바로 그 시기입니다. 기온이 갑자기 30도를 넘어서며 한국인에게는 "앗, 여름이다!" 싶은 날씨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이때를 비로소 '봄(Basant)'이라고 부르며 야외 활동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그들에겐 다가올 진짜 여름에 비하면 이 정도는 시원한 날씨일 뿐이니까요.
4. 진짜 여름: 지상의 용광로 (4월 말 ~ 6월) 제가 2002년의 일기를 쓸 때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던, 델리의 진짜 여름입니다. 기온은 45도를 우습게 넘어가고,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며, '루(Loo)'라고 불리는 뜨거운 바람은 마치 거대한 헤어드라이어 앞에서 숨 쉬는 듯한 고통을 줍니다. 생존을 위해 에어컨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시간입니다.
5. 숨 막히는 습식 사우나: 몬순 (7월 ~ 8월) 뜨거운 여름이 끝나면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몬순은 시원한 낭만을 선사하지 않습니다. 40도의 열기 위에 90%의 습도를 더한, 거대한 '습식 사우나'의 시작입니다. 잠시 쏟아지는 비는 더위를 식혀주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를 끈적거리는 수증기로 가득 채웁니다.
6. 끝나지 않은 여름: 제2의 여름 (9월 ~ 10월) 몬순이 끝나면 다시 맑은 하늘과 함께 '제2의 여름'이 찾아옵니다. 10월까지도 낮 기온은 35도를 웃돌며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많은 여행자들이 10월을 가을로 착각하지만, 델리의 10월은 여전히 여름의 연장선입니다.
7. 신이 내린 축복: 진짜 가을 (11월) 1년 중 델리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뜨거운 열기와 습기가 모두 사라지고, 건조하고 쾌청하며 따뜻한, 그야말로 완벽한 날씨가 한 달 남짓 이어집니다. 모든 야외 활동과 축제가 이 시기에 집중됩니다.
그러나, 2025년의 새로운 변수: 기후변화의 그림자
17년의 경험으로 델리의 이 무자비한 계절 리듬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패턴마저 예측 불가능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델리의 하늘과 공기 속에 스며든 냉혹한 현실입니다.
- 더 짧아지고 사라지는 겨울: 예전에는 12월이면 찾아왔던 본격적인 추위가 1월이 되어서야 시작되는가 하면, 겨울이 짧아지는 대신 갑작스러운 한파가 며칠간 몰아치는 등 종잡을 수 없게 변했습니다. 이는 겨울철 스모그가 더 오래 정체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 더 일찍 시작되고 더 길어진 폭염: 2002년의 제가 2월 말의 30도를 '여름'이라고 느꼈다면, 이제는 3월부터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시작되는 것이 놀랍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45도를 넘나드는 '지상의 용광로' 기간은 더 길어졌고, '역대 가장 더운 4월' 같은 기록은 매년 경신되고 있습니다.
- 예측 불가능한 몬순: 몬순의 패턴은 가장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긴 가뭄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며칠간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져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얌무나 강의 범람으로 도시 일부가 마비되는 등, 이제 몬순은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이 되었습니다.
- 사라져가는 '축복의 11월': 1년 중 가장 완벽했던 11월의 쾌청한 날씨마저, 이제는 디왈리 이후 최악의 스모그 시즌과 겹치며 예전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죠.
결론적으로, 델리의 계절은 이제 '극단적'이라는 단어를 넘어 '혼돈'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예측하기 쉽지 않습니다만,, 이건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올해 특히 비가 많이 오면서 좋은점도 두가지 있습니다. 공기가 전보다 좋아졌고 여름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덥지 않았습니다.
내낸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켜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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