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18일, 월요일, 델리, 맑음
40.1 은행계좌를 만들려고 하다가 똥개훈련만 했다.
오늘 은행계좌를 만들려고 하다가 완전히 똥개훈련만 했다. 인도인에게 하루를 도둑맞은 날이다. 아~ 오늘은 정말 인도인이 싫다. 아니면, 내가 아직도 인도를 잘 모르던가… 인도를 느낄려면 마음을 완전히 비우지 않으면 안된다는데, 마음을 비우기 전에 속 터지게 생겼다.
오늘의 나의 발자취이다.
1. 아침 10시에 집을 나와서 우리동네 카라나은행에 갔다. 카나라은행에서 하는 말이, 인도은행은 계좌개설이 불가능하고, 코넛플레이스에 가면 시티은행이 있는데, 거기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2. 그래서 코넛플레이스로 이동했다. 11시30분쯤 되서 시티은행에 도착했다. 먼저 여직원에게 한참을 물어물어서 양식을 작성하고, 여권 복사하고, 한참을 준비하고서 접수시켰더니, 담당 아저씨가 하는 말이 인도에 있는 외국계은행에서는 외국인에게 통장을 못만드는데, 대신 state bank of india에 가면 외국인도 통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전에 카라나은행에 갔다온 이야기를 했더니, 게가 잘 몰라서 한 이야기인거 같고, 분명히 state bank of india에서 만들수 있다고 한다. 아~ 시간은 벌써 12시30분이 됐다.
3. 배가 고파서 뭣 좀 사먹고 엄청나게 큰 건물에 있는state bank of india로 갔다. 은행도 무진장 크다. 내가 간 곳이 state bank of india의 헤드라고 한다. 하여간에 거기에 갔더니, 점심시간이란다. 아니, 은행도 점심시간이 있네…? 인도에는 있다. 2시30분까지 기다렸다. 점심시간도 무진장 길다…. 우이쒸
4. 점심시간 끝나고, 서류작성해서 드디어 접수했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하는 말이 외국인 통장개설을 할려면 여기가 아니라, state bank of India 의 N.R.I division에 가야 한단다. 아니, 그럼 점심시간 전에 알려주던가. 기껏 기다렸더니...
5. 그래서 다시 나와서 찾아서 찾아서 걸어서 약 20분거리에 있는 N.R.I division에 갔다. 거기서 진짜 만들줄 알았는데, 거기 직원이 하는 말이 여기는 Non Registered Indian (NRI) 즉, 거주자등록이 안된 인도인이 통장 만드는 곳이라면서 아까 내가 갔었던 그곳에서 만드는 거란다. 다시 가란다. 다시 아까 거기로(4번) 으로 돌아갔다.
6. state bank of india에 가서 항의를 했다. 왜 자꾸 사람을 왔다갔다 시키냐면서… 그랬더니, 매니저를 만나게 됐다. 그래서 오늘 내가 겪은 이야기를 했더니, 거주지역이 어디냐고 묻는다. malviya nagar에 산다니깐, 거기에도 state bank of india가 있다면서 거기에 가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높은 사람이니깐 거짓말은 안하겠지 생각하면서 malviya nagar로 돌아왔다. 이때 시간은 벌써 4시다.
7. malviya nagar에 와서 state bank of India 찾아서 갔다. 여기서 난 진짜 통장 만들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는 말은, 여기는 조그만 지점이라서 외국인에게는 통장개설이 안되고, 사우스 익스텐션에 가면 거기에도 state bank of india가 있는데, 거기서 개설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시간은 5시가 넘었다.
상기와 같다. 어떻겠는가? 사람 열받게 생겼나, 안생겼나, 나니깐 참았지…
참고로 오늘 날씨가 무진장 더웠다.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갔다. 땀 많이 났다.
결국 오늘 통장만드는 것은 포기했다. 내일 사우스 익스텐션에 가서 다시 시도하겠다.
오늘 통장을 만들려고 하다가 느낀점.
1. 인도인들은 책임감이 없다. 진짜로 자기가 잘못했다는 말을 한번도 못 들었으며, 책임도 지지 못할 말을 진짜처럼 말한다.
2. 서비스정신이 없다. 고객과 서비스제공자의 개념이 없다.
3. 애사심이 없다. 내가 은행을 개설하고자 은행에 방문했는데, 모두들 왜 자기에게 와서 그러냐는 듯한 느낌이다. 다들 귀찮아 한다.
4. 자기 업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느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늘 짜증나는 몸을 이끌고, 힌디개인교습 2시간 받고 왔다. 힘든 하루였다.
또 저녁에 오토릭샤왈라하고 요금 가지고 엄청 싸웠다. 진짜로 사기꾼 같으니라고.
확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완전히 사기꾼이다.
감기가 나아가다가 다시 돋는다… 이런…
부제: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달은 날
2002년 2월 18일 월요일, 델리의 날씨는 맑았지만 제 마음은 먹구름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낡은 일기장을 펼치자, 그날의 분노와 황당함이 땀 냄새와 함께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인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는 은행 계좌 하나를 만들려고 하루 종일 똥개 훈련만 했던 기억을 아직도 생생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아~ 오늘은 정말 인도인이 싫다. 아니면, 내가 아직도 인도를 잘 모르던가… 인도를 느낄려면 마음을 완전히 비우지 않으면 안된다는데, 마음을 비우기 전에 속 터지게 생겼다."
"...어떻겠는가? 사람 열받게 생겼나, 안생겼나, 나니깐 참았지…"
그날의 일기 내용은 그야말로 '환장의 하루'였습니다. 아침 10시에 집을 나서 동네 은행을 시작으로, 코넛 플레이스 시티은행, 다시 국영은행 본점, NRI(비거주 인도인) 지점, 다시 본점, 그리고 집 근처 지점을 거쳐 다시 사우스 익스텐션 지점까지... 30도 가까운 더위 속에서 온갖 허위 정보와 무책임한 안내에 시달리며 무려 7곳의 은행을 돌았습니다. 시간은 오후 5시를 훌쩍 넘겼고, 결국 통장 하나 만들지 못한 채 몸과 마음만 너덜너덜해진 채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쨌든 오늘의 포스팅 주제를 은행계좌 만들기가 아니라 마음비우기로 한것은 그날 배운것은 은행계좌 만드는 방법보다는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저에게 "인도를 느끼려면 마음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고 조언했던 누군가의 말이 새삼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때는 그저 좌절감에 치솟는 혈압을 삭이는 주문 같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것은 인도의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였습니다.

1. '무책임의 책임': 정보의 부재와 책임감 결여
그날 제가 마주했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정보의 부재'와 '책임감의 결여'였습니다.
- 정보의 오류: 은행 직원들은 각자 다른 정보를 주었고, 심지어 본인들의 업무에 대한 정확한 지식조차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어떤 은행에서는 "외국인은 계좌 개설이 안 된다"고 했고, 다른 곳에서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라며 저를 이리저리 떠밀었습니다.
- 책임감의 부재: "미안하다"거나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본인이 잘못된 정보를 주어 고객이 엉뚱한 고생을 해도, 그저 "여기가 아니라 저기"라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책임'보다 '신의 뜻'이나 '운명'을 더 크게 여기는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하기도 합니다.
2. '서비스'의 다른 개념: 고객과 제공자의 거리감
그때의 저는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인도의 공공 서비스 분야, 특히 당시 은행에서는 '고객 서비스'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희박했습니다.
- '왕'이 아닌 '손님': 한국에서 '고객은 왕'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면, 인도에서는 '나의 업무를 방해하는 존재' 혹은 '그저 일을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 자꾸 나한테 와서 그러냐'는 듯한 직원들의 태도와 귀찮아하는 표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라, 당시 인도 사회 전반에 깔려있던 서비스 마인드 부재의 단면이었습니다.
- 애사심의 부재: 자신이 일하는 은행에 대한 애사심이나, 고객 유치를 통해 은행의 성장에 기여한다는 인식 역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모두가 '나의 일'이 아닐 경우 다른 사람에게 미루기 바빴고, 이는 결국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문제'라는 인식을 강화시켰습니다.
3. 끝없는 '인내'가 요구되는 시스템: 2002년과 2025년의 교차점
그날 일기에 적힌 것처럼, 길기만 한 점심시간, 끝없이 기다려야 하는 줄, 그리고 잘못된 정보로 인한 시간 낭비는 2002년 인도의 관료주의를 상징하는 일상이었습니다. 당시 오토 릭샤 왈라와 요금 문제로 싸웠던 것 또한 이러한 '비효율과 불확실성'의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물론 20여 년이 지난 2025년 현재, 인도는 놀랍도록 변했습니다. 민간 은행의 서비스는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고, 대부분의 금융 업무는 손안의 모바일 앱으로 해결됩니다. UPI 같은 디지털 결제 시스템은 오히려 한국보다 편리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단호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문제는 2025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화려한 디지털 인도의 이면에는, 여전히 2002년의 그림자가 짙게 남아있는 영역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외국인 등록 사무소(FRRO)나 각종 인허가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 국영 은행의 특정 창구, 공공 서비스를 신청하는 과정에서는 20년 전 제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답답함과 비효율, 그리고 책임감 없는 안내를 마주하게 됩니다. 시스템은 디지털화되었을지 몰라도,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태도는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최근 중고 자동차를 구매하여 명의이전을 했는데, 온라인 시스템이 있다고 해서 다 신청하고 접수완료 했는데 진행이 안되더라구요. 알아보니 최종적으로 한번은 자동차 등록소를 방문하여야 한다고 해서 다녀와야 했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가보니, 하루종일 시간 버리며 서류 다 프린트해서 기다리고 똑같이 오프라인으로 다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할거면 뭐하러, 쓸데없이 온라인 시스템을 만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인도의 시스템 앞에서 끝없는 '인내'가 요구되는 것은 과거의 추억이 아닌, 2025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생존 법칙인 셈입니다.
그날의 똥개 훈련은 저에게 "인도를 느끼려면 마음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곧 **'나의 상식과 기준을 내려놓고, 인도의 리듬에 맞추는 법을 배우라'**는 의미였음을. 그리고 그 지독한 하루가 쌓여, 지금의 제가 인도의 변화를 목격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저 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애는 나쁜놈, 거짓말장이, 무책임한 애들이라며 욕하며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이 단계는 인도 초보들이 하는 일입니다.
반면, 저것을 받아들이며 욕할 필요도 없고, 실제 일을 돌아가게끔 만들고 그렇게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고수들입니다.
어쨌든 몸이 아픈 와중에 겪었던 그 지독한 하루는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인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강렬한 '입문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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