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26일, 화요일, 델리, 가끔 구름

오늘 차를 무려 14시간을 탔다. 델리로 돌아옴
48.1. 조쉬마트→릭쉬케쉬
오늘 조쉬마트에서 그 아저씨(인디아은행 아저씨)하고, 같이 멋있는 승용차를 타고, 릭쉬케쉬로 돌아왔다. 역시 차가 좋으니깐 조금 빠르다, 8시간밖에 안 걸렸다.(그저께 일기에서 보았겠지만, 오는데는 버스로 11시간 넘게 걸렸던 곳이다)
아저씨하고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정말 엄청나게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8시간동안 잠도 안자고 계속 이야기를 했으니 당연히 많지. 아마 내가 아는 영어단어 다 쓴 거 같다. 인도이야기, 정치이야기, 군대이야기, 가족이야기, 한국이야기, 월드컵, 경치이야기, 거의 할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 나누었다.
중간에 스리나가르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정차를 했는데, 어떻게 미리 연락을 했는지, STATE BANK OF INDIA 스리나가르 지점에서 사람이 나와서 식당까지 안내하고 차도 준비하고 어떻게 나까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허참, 이거 쑥쓰러워서…
릭쉬케쉬까지 도착하고 나서 아저씨하고 아줌마가 자꾸 데라둔까지 같이 가자고 한다. 하지만 내일도 있고, 분명히 따라가면 제일 비싼데서 숙박할 거 같아서 델리에서 숙박비 내면서 따로 이동숙박비가 너무 많이 들거 같기도 해서 정중히 사양했다. 그랬더니, 아주 아쉬워 하면서 명함을 주면서 5월에 인도여행을 시작하면 꼭 록크노우에 와서 자기집에 오라고 초대를 받았다.
48.2. 릭쉬케쉬→델리
릭쉬케시의 메인 버스터미날에 도착하니 오후 4시경이 되었다. 5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또 에그오므릿을 먹고 조금 기다리다가 버스를 탓다.
버스의 상태는 과히 똥차라고 표현이 딱 맞는 차다. 델리 시내버스보다도 못한 버스다. 그런데, 이 버스가 델리에 10시에 도착한다고 하니 믿겨지지가 않았다. 전번에 타고 온 비교적 상태가 좋았던 야간버스도, 7시간 정도 걸렸는데, 겨우 5시간에 간다니, 그것도 낮에… 속는셈치고 하여간에 탓다.
조쉬마트에서 릭쉬케쉬까지의 풍경이랑, 릭쉬케쉬에서 델리로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먼저, 앞에 풍경은 주로 기암절벽과 자연의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는 반면에 나중에 것은 시골풍경과, 한가함을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물론 델리근처로 가다보면 다소 소란해진다.
릭쉬케쉬를 벗어나서 하리드와로 가는 중에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는데, 길거리를 수십명의 수행자들이 굴러 굴러서 가고 있었다.
걷지를 않고 굴러서 간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아, 저게 말로만 듣던 사두구나!!
인도의 사두는 육체적 고행을 사서 하는 순례자를 말한다. 델리에서 이상한 사람을 한두번 보긴 했는데 사두였는지 잘 모르겠고, 이렇게 단체로 고행을 하는 것은 처음봤다.
오는 중에 옆에 아저씨하고 귤이랑 바나나를 같이 사서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힌디로 몇마디 정도를 나누었다.
델리에 도착하기까지 나름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시골풍경도 좋았고, 사람들의 소란함도 좋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꾸진 버스는 열심히 달려서 처음 이야기 했던 시간보다 약간 늦은 10시30분에 정확히 델리에 도착했다.
어쨌든 신기하다. ㅋ ㅋ 집에 오니 11시반쯤 되었다.
아, 나름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2002년 2월 26일, 저는 리시케시에서 델리로 돌아오는 낡은 버스 창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며칠간의 여행으로 몸은 지쳐있었지만, 제 영혼을 송두리째 흔드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리시케쉬를 벗어나서 하리드와로 가는 중에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는데, 길거리를 수십명의 수행자들이 굴러 굴러서 가고 있었다. 걷지를 않고 굴러서 간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아, 저게 말로만 듣던 사두구나!!"
먼지 나는 아스팔트 위를 자신의 몸으로 굴러 나아가는 사람들.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그 모습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이며, 왜 그런 극단적인 고행을 자처하는 것일까요? 1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저는 비로소 그날의 충격적인 광경 이면에 숨겨진 깊은 철학적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사두는 누구인가?
사두(Sadhu)는 힌두교의 수행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은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영적인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주황색(Saffron) 옷, 길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자타'), 온몸에 바른 하얀 재('비부티'), 그리고 손에 든 삼지창('트리슐라')은 그들의 상징입니다. 이들은 집, 재산, 가족, 심지어 자신의 이름까지 버리고, 오직 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사람들의 보시(布施)에 의지해 순례의 길을 걷습니다.
2. 그들이 버린 것: 힌두교의 세 가지 삶의 목표
사두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네 가지 삶의 목표, 즉 '푸루샤르타(Purusharthas)'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힌두 철학은 인간이 이 네 가지를 순서대로 추구하며 완전한 삶에 이른다고 가르칩니다.
1.다르마 2.아르타 3.카마 4.목샤 이 네가지가 힌두교의 4가지 목표입니다.
- 다르마 (Dharma, धर्म): 의무와 도리. 개인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적,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삶의 단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바탕입니다.
- 힌두교는 고대 인도 사회를 유지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했던 시스템이었습니다. - 아르타 (Artha, अर्थ): 부와 번영. 다르마의 테두리 안에서 부와 명예,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 브라민과 크샤트리아의 부의 축적을 정당화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 카마 (Kama, काम): 사랑과 욕망. 감각적인 즐거움, 사랑, 정서적 만족 등 인간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예술, 사랑,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 고대부터 중세까지 국가의 인구수는 바로 국력이었습니다. 전쟁 혹은 생산력에 필요했습니다. 인구 증가 및 사회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섹스를 국가적으로 권장했다라는 이론입니다.
일반적인 힌두교도는 학생 시기를 거쳐, 가정을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가주기(家住期)' 동안 위의 '아르타'와 '카마'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이 세가지는 사회와 국가가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존재하는 종교보다는 삶의 방식을 정의하는 도리입니다.
세상에 어느 종교에서 법을 잘 지켜라, 부를 추구해라, 섹스를 열심히 해라 라고 합니까? 하지만 힌두교에서는 중요한 교리입니다. 그렇다보니 힌두교는 종교이면서도 생활 그 자체이며, 힌두교의 많은 신들 또한 생활 밀착형 신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힌두교의 목표 4개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다음에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3. 사두, 그들이 추구하는 단 하나: 마지막 목표, '목샤'
그리고 이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성취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 목샤 (Moksha, मोक्ष): 해탈과 자유. 삶과 죽음이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고리('삼사라')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자유와 영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힌두교도가 추구하는 인생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바로 여기서 사두의 길이 시작됩니다. 사두는 '아르타(부)'와 '카마(욕망)'라는 중간 단계를 과감히 건너뛰고, 오직 궁극의 목표인 '목샤'를 향해 자신의 전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세속적인 성공과 즐거움은 해탈에 이르는 길의 장애물일 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4. 목샤에 이르는 길: 육체적 고행, '타파스야'
그렇다면 어떻게 목샤에 이를 수 있을까요? 사두들이 선택한 방법 중 가장 극적인 것이 바로 '타파스야(Tapasya)', 즉 육체적 고행입니다.
2002년, 제가 길 위에서 보았던 구르는 사두들의 모습이 바로 이 '타파스야'의 한 형태였습니다. 그 외에도 수년간 한 팔을 들고 내리지 않거나, 한 다리로 서서 지내거나,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맨몸으로 견디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고행을 이어갑니다.



이런 고행의 목적은 단순히 몸을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육체적 고통을 통해 정신을 단련하고, '나'라는 자아와 육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며, 영적인 에너지를 쌓아 해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처절한 수행의 과정입니다.
물론 오늘날 인도에서 만나는 모든 사두가 진정한 구도자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부는 종교의 이름을 빌린 걸인일 수도 있고, 일부는 세속의 삶에서 도피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0여 년 전, 제 눈앞에서 묵묵히 길을 굴러가던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제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이 삶의 최고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보이지 않는 '깨달음'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들은 이 시대에 남은, 신과 가장 가까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몸부림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인도 > 인도 지역전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0. 두 개의 은행, 두 개의 인도, 과거와 현재의 공존 (0) | 2025.10.14 |
|---|---|
| 49. 화려함 뒤에 숨겨진 눈물: 인도 결혼 문화의 두 얼굴 (0) | 2025.10.14 |
| 47. 인도에서 스키를? 2002년 아울리(Auli)에서의 새하얀 기억 (0) | 2025.10.13 |
| 46. 10시간의 고행, 10시간의 황홀: 갠지즈의 원류를 따라 올라가는 길 (2) | 2025.10.12 |
| 45. 고기 없는 도시, 릭쉬케시 : 자체적으로 성스러운 도시이며, 요가의 도시 그리고 히말찰 북인도 관광의 거점이기도 함. (0) | 2025.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