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8일, 수요일, 델리, 맑음
119.1 인도에서의 일회용품
일회용품의 시작이 인도라고 말하면 놀랄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이 그럴 수도 있다. 인도에는 전통적인 일회용품이 많다.
길거리 식당에서는 나뭇잎으로 만든 접시를 사용한다. 또, 치솔도 나뭇가지를 짤라서 쓰기도 한다.
기차를 타든 길거리든 짜이를 흙컵에 담아서 파는데, 예쁘게 생겼다. 그런데, 그게 일회용이다. 다 마시고 나면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면 된다. 인도에 처음 온 어떤 한국인은 그것을 모르고, 차를 판 아이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그릇 돌려줄려고.
정작 진짜 일회용 종이컵은 비싸서 그런지, 진짜 일회용 종이컵에 파는 짜이는 4~5루피정도 하고, 흙그릇에 파는 짜이는 3루피정도 밖에 안 한다.
인도에서는 워낙 인건비가 싸서 그런지, 공장에서 나온 것들은 모두 비싸고, 흙으로, 그리고 인건비로 만드는 것은 정말 싸다. 마치 흙그릇처럼.
공장에서 나온 일회용품은 비싸기 때문에, 종이컵이나 비닐컵을 아주 귀하게 아껴서 계속 쓰고, 흙그릇 같은 것들은 한번 쓰고 바로 깨버린다. 예를 들어 콜라 1리터짜리 빈병을 잘 안버린다. 우리나라 같으면 쓰레기인데, 약간 낮은 층 사람들 위주로, 아침에 길거리 화장실 갈때도 그렇고 낮에도 그렇고 도시락통마냥 물을 담아 다니는 중요한 용기로 계속 재사용한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일회용 가스라이타의 경우에도 다 쓰고도 가스돌 갈고, 가스를 또 어떻게 집어넣어서 계속 쓰는 사람들이 인도인이다.
인도에 날씨가 아주 더워서 풍토병이 많았는데, 그 전염을 막기 위해서 옛날부터 그런 일회용품을 써 왔다는 과학적인(?) 주장도 있다. 일리가 있다.
23년 전에 저는 인도 기차역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사람들이 차를 다 마시고는 컵을 창밖으로 휙 던져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 놀라운 건 그 컵이 흙으로 만든 토기였다는 점입니다.
<2002년 5월 8일의 일기>
119.1 인도에서의 일회용품 일회용품의 시작이 인도라고 말하면 놀랄만한 사실이다. 기차를 타든 길거리든 짜이를 흙컵에 담아서 파는데, 그게 일회용이다. 다 마시고 나면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면 된다. 인도에 처음 온 어떤 한국인은 그것을 모르고, 차를 판 아이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그릇 돌려주려고.
오늘은 인도가 간직한 놀라운 **'전통 일회용품'**의 세계와, 그 속에 숨겨진 종교적, 경제적 비밀을 파헤쳐 봅니다.
1. 흙에서 와서 흙으로: '쿨라드(Kulhad)' 이야기
일기 속에 등장한 흙 컵의 정식 명칭은 **'쿨라드(Kulhad)'**입니다. 유약이나 색칠을 하지 않고, 강가의 진흙을 빚어 구워낸 투박한 컵입니다.

- 왜 던질까?: 100%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바닥에 던져 깨뜨리면 비가 오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플라스틱 컵이 썩는 데 500년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인도는 수천 년 전부터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해 온 셈입니다.
- 한국인 여행자의 오해: 일기에도 언급했지만, 90년대~2000년대 초반 인도 배낭여행 1세대들 사이에선 전설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한 한국 여행자가 짜이를 다 마시고 컵을 돌려주려고 짜이 왈라(차 파는 소년)를 30분 동안 찾아다녔다. 소년은 컵을 받더니 바닥에 '쨍그랑' 깨버렸고, 여행자는 충격을 받았다." 아까운 그릇을 왜 깨냐"는 한국인의 '아나바다' 정신과 인도의 일회용 문화가 충돌한 귀여운 해프닝이죠.
2. 왜 굳이 일회용일까? (종교적 이유: Jutha)
인도인들이 그릇을 한 번 쓰고 깨버리는 것은 단순한 낭비가 아닙니다. 힌두교의 '주타(Jutha)' 개념 때문입니다.
- 침이 닿으면 부정하다: 힌두교에서는 남의 침이 닿은 음식이나 그릇을 극도로 부정하게(Impurity) 여깁니다. 토기는 미세한 구멍이 있어 아무리 씻어도 남의 타액이 스며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해결책은 파괴: 그래서 남이 썼던 그릇을 쓰느니, 차라리 쓰고 깨버리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2002년 일기에 언급된 "전염병을 막기 위한 과학적 주장"도 사실 이 종교적 위생 관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3. 나뭇잎 접시 '파탈(Pattal)'과 '도나(Dona)'
일기에 나오는 "나뭇잎 접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살(Sal) 나무나 바나나 잎을 말려 꿰매어 만든 접시를 '파탈(Pattal)', 밥그릇 모양을 **'도나(Dona)'**라고 합니다.

- 가난의 상징? 아니, 최고의 친환경: 예전엔 가난한 사람들이 쓰는 식기라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유럽에서 '친환경 바이오 접시'라며 비싸게 팔립니다. 다 먹고 버리면 소가 와서 먹어치우니 쓰레기가 남지 않습니다.
4. 2002년의 역설: 공산품이 더 귀했던 시절
일기에서 재미있는 포인트는 경제적 관점입니다.
"공장에서 나온 일회용품(종이컵)은 비싸서 아껴 쓰고, 인건비로 만드는 흙그릇은 싸서 깨버린다."
2002년 당시엔 사람 손으로 빚은 쿨라드가 공장제 플라스틱 컵보다 쌌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플라스틱 물병이나 일회용 라이터를 버리지 않고 수리해서 썼죠. 지금은 반대가 되었습니다. 인건비가 올라 쿨라드는 '고급 카페'의 감성 아이템이 되었고, 길거리는 값싼 플라스틱 컵 쓰레기로 뒤덮였습니다.
5. 다시 돌아오는 쿨라드
흥미로운 건 최근 인도 철도청(Indian Railways)이 기차역에서 플라스틱 컵을 퇴출하고 다시 '쿨라드'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 랄루 프라사드 야다브의 시도: 과거 철도부 장관이었던 랄루 프라사드는 "도공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환경도 살리자"며 기차 내 쿨라드 사용을 추진했었습니다. 비록 무거워서 실패했지만, 최근 환경 문제로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6. 맺음말
23년 전, 짜이 한 잔 마시고 컵을 바닥에 던지며 느꼈던 그 묘한 쾌감(스트레스 해소!)과 죄책감.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장 완벽한 **'친환경 소비'**였습니다.
오늘 델리 길거리에서 짜이 한 잔 드신다면, 과감하게 바닥에 던져보세요. "쨍그랑!" 소리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는 그 컵처럼, 여러분의 스트레스도 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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