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1일, 월요일, 델리, 맑음
82.1 4월이다.
4월이다. 어느새 3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지역전문가라는 이유로 이 외딴곳에 나와 홀로 지낸지 3개월이 지났다.
어떻게 보면 정말 긴 시간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빨리 지나간 거 같기도 하다. 공부에 신경 쓰고 바쁘게 생활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데, 가족생각만 하면 정말 시간이 더디게 간다.
초기 모든것이 낮설음에 따른 당황, 그 이후 다가온 외로움과의 싸움이 이어졌고, 그 이후 나름 루틴이 생기며 나의 일상을 살고 있다.
원래 4월중순에 지방 문화와 시장조사를 위하여 지역 이동을 할 계획이었으나, 4월말에 있는 힌디자격증 시험을 보는 것도 있고 해서 델리 거주 기간을 한달 연장했다. 그 동안 좀더 어학공부와, 이통통신 시장구조 조사를 진행해야 겠다.
겨우 한달 남은 델리의 생활을 좀더 빡쎄게 지내야겠다.
그나저나, 정말 날씨가 장난아니게 덥다. 토요일 기온이 39도까지 올라갔다. 요즘 계속 38~40도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 아마 이번주내로 40도를 훌쩍 넘어갈 거 같은 느낌이다.
부제: 14억 인구 중 우리가 만나는 100명, 그리고 진짜 인도
2002년 4월 1일, 제 낡은 일기장에는 델리에 온 지 3개월을 맞이한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이 적혀 있습니다.
"4월이다. 어느새 3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원래 4월중순에 지방 문화와 시장조사를 위하여 지역 이동을 할 계획이었으나... 델리 거주 기간을 한달 연장했다. 그 동안 좀더 어학공부와, 이통통신 시장구조 조사를 진행해야 겠다... 그나저나, 정말 날씨가 장난아니게 덥다. 토요일 기온이 39도까지 올라갔다."
당시 저는 LG의 '지역전문가' 과정 중이었습니다. 1월부터 5월 초까지는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5월부터 8월까지는 혹서기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전역을 돌며 지방색을 연구하고, 마지막엔 LG전자 법인에서 현장 실습을 하는, 그야말로 '인도를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40도를 넘나드는 더위 속을 배낭 메고 쏘다녔던 그 시간이, 훗날 제가 인도 법인장으로서 조직을 이끄는 데 얼마나 거대한 자산이 될지를 말이죠.
1. '다람쥐 쳇바퀴'의 함정: 14억 분의 100
저는 지역전문가 1년, LG전자 주재원 5년, 바텍 법인장 11년, 도합 17년을 주재원 및 법인장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후배 주재원들을 보며 안타까운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주재원 생활 4~5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 긴 시간 동안 우리가 10분 이상 말을 섞는 '진짜 대화'를 나누는 인도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회사 직원 10여 명, 운전기사, 아파트 경비원, 자주 가는 한식당 종업원, 그리고 업무상 만나는 거래처 담당자 몇 명. 다 합쳐도 100명이 채 되지 않을 겁니다.
14억 인구 중 고작 100명.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와 '집', 주말에는 '골프장'이나 '쇼핑몰'이라는 안전하고 쾌적한 동선 안에서만 보냅니다. 이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낯선 환경에서 업무 성과를 내야 하는 주재원들에게, 이 루틴은 생존과 효율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저도 그랬습니다.

2. 우리가 욕하는 그들이, 우리의 월급을 준다
하지만 이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인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치명적인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도의 덥고 습한 날씨, 느린 행정,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면 술자리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인도와 인도인들을 험담하게 됩니다. "얘네는 이래서 안 돼", "정말 답답해 죽겠어"라며 고객이나 직원들을 낮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본질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답답해하는 그 '인도 직원'들이 우리 회사를 굴러가게 만드는 손발이며,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그 '인도 고객'들이 지불하는 루피(Rupee)가 모여 법인의 운영 자금이 되고, 결국 우리의 월급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고객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무시하면서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을까요? 직원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그들이 회사를 위해 헌신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저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사무실 밖으로, 그들의 삶 속으로
저 역시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역전문가 시절 바닥을 훑었던 경험, 그리고 16년간 법인을 운영하며 깨달은 것은 **"책상 위 보고서에는 진짜 인도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도에서 고군분투하시는 주재원 여러분, 여러분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디 그 안전한 쳇바퀴를 잠시 멈추고, 조금 더 밖으로 시선을 돌려주시길 감히 제언합니다.

- 직원의 집을 방문해 보세요: 그가 어떤 환경에서 사는지, 가족들에게 어떤 가장인지 눈으로 보면 그 직원을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집니다. 인도인들은 손님 초대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더 많은 로컬 고객을 만나세요: 고급 호텔 로비가 아닌, 그들의 땀 냄새 나는 현장으로 가보세요. 그들의 진짜 니즈는 그곳에 있습니다.
- 경청하세요: 지시하기보다 그들의 문화와 생각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려 노력할 때, 비로소 인도라는 거대한 시장도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줄 것입니다. 40도의 더위보다 무서운 것은, 에어컨 바람 속에 갇혀 현장의 온도를 잊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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