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29일, 금요일, 델리, 맑음

79.1 오늘 홀리 축제이다.
오늘 인도의 설날격인 홀리 축제이다.
일부 회사는 어제부터 휴무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제부터 축제 분위기에 도시는 싸여있다.
오늘 난 하루종일 밖에 안 나가고 집에 있었다. 밖은 너무 위험하다.
이 집 식구들도 밖에 아무도 안 나간다. 나한테도 아침부터 밖에 나가지 말라고 충고를 주었다. 신문에도 홀리를 안전하게 보내자는 공익광고가 잔뜩 쓰여져 있다. 그 이유는 색깔물,가루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그 공격을 받고서 수 십명이 다치고 많은 사람이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신문에도 그 시력을 잃은 사람의 사진과 함께 안전한 홀리를 보내자고 주장하고 있다.
원래 그 색깔 가루, 물은 전통색소를 써야 하는데, 가격도 비싸고 하기 때문에 그리고 일부러 악의가 있는 사람들이 싸구려색소와 화학색소, 그리고 심지어 페인트까지 동원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걸 눈이나 귀, 얼굴등에 맞으면 상당히 오랬동안 고생을 해야 한다. 잘못하면 심각한 휴유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오늘 발코니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는데, 사실 그것도 재미있었다.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온몸이 뻘겋고 파랗고 가지가지 색깔을 뒤집어 쓰고 지나간다.
참, 인도인들은 홀리아침에는 “해피 홀리”로 인사한다.
그리고 홀리가 지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라고 부른다. 이제 진짜로 더워지겠군…
몇일전 홀리를 일주일이나 앞두고 반바지에 빨간색소를 뒤집어 쓴 에피소드를 일기에 적은것이 기억나네요.
75. 2002년의 물풍선과 17년간의 축제 관찰기: 홀리는 왜 약해지는가?
2002년 3월25일, 월요일, 델리, 맑음75.1 색깔 물풍선을 맞다.- 우이씨오늘 우리 동네 길거리 버스정거장 안쪽에서 빨강 물풍선을 맞았다. 내 반바지 뒤 엉덩이부분에 맞았는데, 바지가 다 빨갛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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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설명했듯이 당시에는 홀리 축제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위 일기에 적었듯이 한국의 설날에 비교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부제: 신화, 역사, 그리고 지역별로 다른 인도의 색채 축제
2002년 3월 29일, 홀리 당일. 제 낡은 일기장에는 축제의 즐거움보다는 '안전'에 대한 걱정이 더 크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난 하루종일 밖에 안 나가고 집에 있었다. 밖은 너무 위험하다... 신문에도 그 시력을 잃은 사람의 사진과 함께 안전한 홀리를 보내자고 주장하고 있다."
집주인 식구들조차 외출을 삼가라고 말릴 정도로, 당시의 홀리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발코니 아래로 지나가는 온몸이 형형색색으로 물든 사람들을 보며, 저는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미치게(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만드는 걸까요?
오늘은 인도 3대 축제 중 하나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축제로 꼽히는 '홀리(Holi)'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 홀리의 기원: 선은 악을 이긴다 (홀리카 다한)
홀리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가장 널리 알려진 기원은 힌두 신화 속 악마 왕 히란야카시푸의 이야기입니다.
- 프라흐라드와 홀리카: 악마 왕에게는 비슈누 신을 숭배하는 아들 '프라흐라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기 위해, 불에 타지 않는 축복을 받은 여동생 '홀리카(Holika)'에게 조카를 안고 불 속에 들어가라고 명령합니다.
- 반전: 하지만 비슈누 신의 가호로 프라흐라드는 멀쩡했고, 오히려 불에 타지 않는다던 홀리카가 타 죽고 맙니다.
- 의미: 이를 기념하여 홀리 전날 밤, 악마 **홀리카를 태우는 거대한 모닥불 의식인 '홀리카 다한(Holika Dahan)'**을 치릅니다. 즉, 홀리의 가장 큰 의미는 **'선이 악을 이긴 승리'**입니다.
2. 색채의 기원: 크리슈나의 장난 (랑왈리 홀리)
그렇다면 왜 서로에게 색을 뿌릴까요? 이것은 사랑과 장난의 신, **크리슈나(Krishna)**의 전설에서 유래했습니다.
- 파란 피부의 크리슈나: 어릴 적 악마가 준 독 젖을 먹고 피부가 파랗게 변한 크리슈나는, 피부가 하얀 연인 라다(Radha)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 어머니의 조언: 어머니 야쇼다는 "라다의 얼굴에도 네가 원하는 색을 칠해 보렴"이라고 조언했고, 크리슈나가 라다와 고피(양치기 소녀)들에게 색 가루를 뿌리며 장난을 친 것이 오늘날 **'색채의 축제(Rangwali Holi)'**가 되었습니다.
- 의미: 그래서 홀리는 **'사랑의 축제'**이자, 겨울의 칙칙함을 걷어내고 봄의 생동감을 맞이하는 **'봄의 축제'**이기도 합니다.
3. 인도인에게 홀리란?: 모든 경계가 무너지는 날
인도 사회는 카스트, 종교, 성별, 빈부 등 수많은 경계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지만 홀리 날만큼은 이 모든 경계가 일시적으로 해체됩니다.
- "Bura na mano, Holi hai" (기분 나빠 마, 홀리잖아): 이 말은 홀리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구입니다. 이날은 누구나 누구에게나 색을 칠할 수 있습니다. 직원이 사장에게, 아이가 어른에게, 낮은 카스트가 높은 카스트에게 색 가루(Gulal)를 뿌립니다.
- 카타르시스: 형형색색의 가루를 뒤집어쓰면 누가 부자이고 누가 가난한지, 누가 높은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이 '익명성'과 '일탈'이 주는 해방감이야말로 인도인들이 홀리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4. 지역마다 다른 홀리: 이렇게나 다양하다고?
인도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홀리를 즐기는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 브라즈 키 홀리 (Braj Ki Holi) - 북인도 마투라/브린다반: 크리슈나 신의 고향인 이곳의 홀리는 가장 전통적이고 성대합니다. 무려 1주일 이상 축제가 지속됩니다.

브라즈 키 홀리 - 랏마르 홀리 (Lathmar Holi) - 바르사나: '막대기로 때리는 홀리'라는 뜻입니다. 전설에 따라 여인들이 긴 막대기(Lathi)로 남성들을 때리는 시늉을 하고, 남성들은 방패로 이를 막으며 춤을 춥니다. 여성의 파워를 보여주는 독특한 전통입니다.

랏마르 홀리 - 풀론 키 홀리 (Phoolon Ki Holi) - 브린다반: 색 가루 대신 엄청난 양의 '꽃잎'을 서로에게 뿌리는 가장 향기롭고 아름다운 홀리입니다.

풀론 키 홀리 
풀론 키 홀리 - 돌 자트라 (Dol Jatra) - 서벵골: 벵골 지역에서는 홀리를 '돌 자트라'라고 부릅니다. 색 가루를 뿌리는 것은 같지만, 그네에 신상을 태우고 노래와 춤을 즐기는 문화적 요소가 강합니다.

돌 자트라 - 남인도의 홀리: 북인도만큼 격렬하지 않습니다. 주로 사원을 중심으로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거나,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2년의 일기장 속 저는 "이제 진짜 더워지겠군"이라며 홀리를 여름의 시작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저는 홀리가 인도의 건조하고 계급화된 사회에 생명을 불어넣는 거대한 숨구멍이라는 것을 압니다.
비록 예전보다 그 광기는 줄어들었지만(다행히도!), 서로의 얼굴에 색을 칠하며 "해피 홀리!"를 외치는 그 순간만큼은, 14억 인도인 모두가 평등하고 즐거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마법 같은 시간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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