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2002년7월11일, 목요일, 방갈로, 가끔 구름
183.1 방갈로에 도착
기나긴 뿌네의 일정을 마치고 오늘 드디어 비행기편으로 방갈로에 도착했다.
뿌네에서 방갈로의 비행항로는 매일 인디아에어라인과 제트에어라인이 운행하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뭄바이에서 방갈로까지의 거리보다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더 비싸다는 것이다. 현지 여행사에 물어보니, 뿌네 공항의 이용자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비행기가 많은 뭄바이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여기는 인도이니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비행시간은 약 1시간 20분 정도로 제법 많이 날라간다.
뿌네의 기후도 나쁘지 않았지만 방갈로의 날씨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시원한 공기와 인도 같지 않는 도시 모양, 그리고 많은 나무들…
정원도시라고 불리울 만큼 방갈로는 나무가 많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에 MG로드 쪽으로 잠깐 나갔다 왔는데, 써늘함을 느꼈다. 바람이 차다.
184 2002년7월12일, 금요일, 방갈로, 가끔 구름
184.1 정원의 도시라 불리울 만큼 공원이 많은 방갈로
오늘 방갈로를 대표할 수 있는 2개의 공원에 갔다.
랄바흐 보타니칼 가든과, 쿠본 파크 이다.
랄바흐 보타니칼 가든은 방갈로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96헥타르의 아주 넓은 공원이다. 랄바흐는 붉은 가든이라는 뜻인데, 이 공원이 처음 만들어진 17세기에 하이데르알리와 그의 아들 티푸술탄의 성을 만들면서 같이 조성한 공원인데, 그 성이 온통 붉은 벽돌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원안에는 수백년이상 된 아름들이 나무들이 많다. 그리고 열대식물과 아열대 식물도 있다.
공원의 중앙에는 런던에 있는 크리스탈 팰리스를 본 뜬 유리로 된 작은 집이 있다. 그 옆에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인형이 둘러져 있다. 보고 있으면 난장이들의 표정이 참 재미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쿠본 파크는 MG로드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역시 120헤타르의 엄청나게 넓은 공원이다. 그 옆에는 바로 어린이대공원이 붙어있다. 어린이공원에 가면 바이킹, 기차, 회전목마등 놀이 시설이 있고, 가족나들이를 나온 많은 인도인 가족을 볼 수 있다. 또, 공원의 뒤쪽에는 주최고 법원과 인더스트리얼 뮤지엄, 그리고 조그마한 아쿠아리움이 있다.
이 공원도 랄바흐공원과 마찬가지로 아름들이 나무와 산책로가 아주 잘 가꾸어져 있다. 많은 젊은 연인들을 볼 수 있다.
184.2 MG로드 – 인도 같지 않는 인도
인도의 모든 도시에 가면 MG로드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이름을 따서 MG로드라고 하는데, 대부분 그 도로가 가장 중심에 있는 도로로써 상업의 중심지이다.

오늘도 방갈로의 MG로드에 갔는데, 이 곳의 분위기는 정말 인도 같지 않다. 마치 우리나라의 압구정동, 사당동 정도는 안돼도, 최소 역삼동 정도는 될 것 같다. 많은 젊은이들과 많은 옷가게, 전자 오락실, 식당, KFC, 피자헛, 대형 슈퍼마켓 등등, 인도에 와서 이런 것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날씨도 좋고, 슈퍼도 있고, 정말 오래 있어도 지겹지 않을 것 같은 도시이다.
MG로드 설명한 포스팅이 있었죠? https://gshin.tistory.com/189
180~181. [인도 뿌네 Part 7] 생활가이드: MG로드만 알면 길치 탈출? 알아두면 쓸모 있는 인도 도로명
180 2002년7월8일, 월요일, 뿌네, 가끔 구름180.1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옴어제부터 몸이 조금 아팠는데,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열과 몸살기가 찾아 왔다. 힘들게 일어나서 병원에
gshin.tistory.com
드디어 델리에서 시작된 지역전문가 활동일 드디어 인도의 남부, 데칸 고원의 꽃이라 불리는 방갈로르(Bangalore, 현 벵갈루루)에 이르게 되었네요.
2002년 일기 속 "인도 같지 않은 도시", "환상적인 날씨", "정원의 도시"라며 감탄했듯이 뭄바이의 끈적함과 델리의 먼지를 털어내기에 방갈로르는 그야말로 제격이었겠네요.
오늘은 당시 2002년 첫인상을 바탕으로, '인도의 실리콘밸리'가 된 방갈로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 급성장 이면에 숨겨진 고질적인 도시 문제와 정치적 배경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인도 방갈로르] '정원의 도시'에서 '실리콘밸리'로: 천국 같은 날씨 뒤에 숨겨진 교통 지옥과 정치의 아이러니
'2002년 7월 11일~12일, 방갈로르, 맑음.'
뿌네에서 비싼 비행기 삯을 치르고 남인도의 관문, 방갈로르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에 "여기가 진짜 인도가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어요.
2002년의 일기 속 저는, 방갈로르의 시원한 공기와 인도 같지 않는 도시 모양, 그리고 많은 나무들…이라며 감탄하고 있습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에 MG로드 쪽으로 잠깐 나갔다 왔는데, 바람이 차서 서늘함을 느꼈다고 적혀있네요.
2002년의 방갈로르는 '은퇴자의 낙원(Pensioner's Paradise)'이라 불리던 시절의 여유로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전 세계 IT 기업의 격전지이자, 삼성전자의 거대한 R&D 센터가 자리 잡은 인도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1. 왜 이렇게 시원할까요? (지리학적 축복)
많은 분이 "남인도니까 더 덥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시지만, 방갈로르는 예외입니다. 비밀은 바로 '고도(Altitude)'에 있습니다.
방갈로르는 해발 920m의 데칸 고원 위에 자리 잡고 있어요. 서울의 북한산 정상높이(836m)보다 높은 곳에 도시가 있는 셈이죠. 이 때문에 일 년 내내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온화하고 쾌적한 날씨를 자랑합니다. 이 기후 조건은 훗날 외국 기업들이 방갈로르를 선호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 가든 시티에서 실리콘밸리로 (역사와 성장)
일기 속에 등장한 랄바흐(Lalbagh) 식물원과 큐본 파크(Cubbon Park)는 방갈로르가 왜 '가든 시티'인지 증명해 줍니다.
이곳은 쾌적한 날씨 덕분에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군사 주둔지(Cantonment)로 개발되었고, 서구적인 공원과 도로망, 골프장, 펍(Pub)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습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1980년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를 시작으로, 1990년대 말 'Y2K 밀레니엄 버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인도의 값싸고 우수한 IT 인력을 찾으면서 방갈로르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쾌적한 기후, 풍부한 영어 구사 인력, 그리고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인도 과학원(IISc) 등 연구 인프라가 시너지를 낸 것입니다.
현재는 삼성전자, 삼성반도체 인도 법인(SSIR)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 기업이 이곳에 R&D 센터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갤럭시 스마트폰 카메라와 AI 기능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곳 방갈로르 연구원들의 손끝에서 탄생한답니다.
3. 성장의 그늘: 교통 지옥과 전력난, 그리고 정치의 아이러니
하지만 "오래 있어도 지겹지 않을 것 같다"던 2002년 저의 감상은, 2026년 현재 "교통 체증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비명으로 바뀌었습니다.
방갈로르의 악명 높은 교통 체증(구글지도를 켜면, 항상 온 도시의 도로가 핏줄마냥 새빨갛답니다.)과 만성적인 물 부족, 전력난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거래처 본사가 방갈로 있어 매 분기마다 방문했었는데, 공항에서 도심까지의 거리는 정말 멀고, 도심에 들어가서 반대편으로 이동하는데 또 한시간 이상 걸리고, 도시 내 이동이나 전시회 방문은 정말 고역이었답니다.
도대체 IT로 벌어들이는 돈이 천문학적인데, 왜 인프라는 이토록 열악할까요?
여기에는 뿌리 깊은 '정치적 딜레마'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도시의 돈 vs 시골의 표'라는 카르나타카(Karnataka) 주의 정치 구도 때문입니다. 방갈로르는 주 전체 세수의 60~70% 이상을 담당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하지만 선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표(Vote)'는 방갈로르가 아닌 광활한 농촌 지역에 있습니다.
주 총리(Chief Minister)나 집권당 입장에서 방갈로르의 도로를 닦는 것보다, 농촌 지역에 전기세를 면제해주거나 쌀을 무료로 주는 포퓰리즘 정책이 재집권에 훨씬 유리합니다. 결국 방갈로르에서 거둔 막대한 세금은 도시 인프라 재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농촌의 표심을 잡기 위한 보조금으로 흘러들어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죠.
4. 방갈로르의 위기와 라이벌의 부상: "Bye-bye Bangalore, Hello Hyderabad"
방갈로르가 정치적 이유로 인프라 재투자에 소홀했던 지난 10여 년간,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대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교통 지옥에 갇혀 직원들이 출근하다 지쳐 사표를 쓰는 상황이 되자, 기업들은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을 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바로 '하이데라바드(Hyderabad)'입니다.
하이데라바드는 철저한 계획하에 '사이버라바드(Cyberabad)'라는 IT 특구를 육성했습니다. 이곳의 주 정부는 방갈로르와 달리 "기업 유치가 곧 복지"라는 기조로 인프라에 공격적으로 투자했습니다. 방갈로르에는 없는 8차선 외곽 순환 도로가 도시를 시원하게 뚫어주어 교통 체증이 훨씬 덜합니다.
결국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메타) 등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인도 제2 캠퍼스나 최대 규모의 해외 오피스를 방갈로르가 아닌 하이데라바드에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와 기후 면에서는 여전히 방갈로르가 우위(Legacy)를 점하고 있지만, 대규모 인프라가 필요한 거대 IT 기업들은 이제 "굳이 교통 지옥 방갈로르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며 하이데라바드로 향하고 있습니다. (저의 일기의 다음 다음 행선지가 하이데라바드이니 그때 또 한번 설명하겠습니다.)
5. 2002년의 MG로드 vs 2026년의 MG로드
2002년 7월 12일의 일기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MG로드의 분위기는 정말 인도 같지 않다. 마치 우리나라의 압구정동, 최소 역삼동 정도는 될 것 같다. 많은 젊은이들과 옷가게, 식당, KFC, 피자헛... 인도에 와서 이런 것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제가 보았던 2002년의 MG로드는 당시 인도의 '미래'였습니다. 지금의 MG로드는 화려한 메트로 역이 들어서고 훨씬 더 번잡해졌지만, 그 상징성은 여전합니다. 다만, 도시의 중심축이 IT 단지가 있는 외곽으로 분산되면서 예전만큼의 독보적인 위상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2002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랄바흐 공원을 거닐던 저는 이 평화로운 도시가 20년 뒤 전 세계 테크 기업의 전쟁터이자 인프라 부족으로 신음하는 도시가 되리라 상상이나 했을까요? 방갈로르는 인도의 눈부신 발전과 고질적인 병폐가 가장 극적으로 충돌하는 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