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19일, 화요일, 델리, 맑음, 34도

69.1 영국문화원 새로운 수업을 시작하다.
지난주까지 Business Communication Skill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이번주 오늘부터 새로운 수업을 시작했다.
과정명은 General English Intermediate-3 과정이다. 비교적 상급에 속하는 과정이다.
오늘 첫 수업을 했는데, 사람이 일단 적어서 좋았다. 단지, 6명.
특별히 이번에는 나말고 한국인이 또 있어서 6명중에 2명이 한국인이다.
지난 번에는 주로 비즈니스관련 영어를 공부했으나, 이번에는 일상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문법, 쓰기, 읽기, 듣기가 전부 포함된 과정이다.
어제부터 영어공부도 시작했으니, 이제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야 겠다.
참, 내일부터 매일 아침 미국인에게 2시간씩 영어개인교습도 하기로 했다. 9~11시까지.
이제 얼마 안 남은 기간 빡쎄게 공부해야 겠다.
약 한달 반도 안 남았다. 시간이 얼마 없다.
69.2 릭샤왈라랑 열라리 싸우다 – 경찰서까지 갈뻔했다.
오늘 저녁 수업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릭샤를 탔다. 처음에 영국문화원에서 100루피를 부르길래, 50루피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약 5분을 흥정을 했다. 요즘 난 릭샤값 흥정정도는 힌디로 충분히 하고 있다. 물론 오늘도 힌디로 했다. 그렇게 5분을 흥정하고 60루피에 가기로 하고 탔다. 그런데, 다와서 하는 말이, 80루피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놈이 하는 말이, 심야운행요금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왜 탈 때 이야기 안했냐고 했더니, 그때는 10시가 안넘어서 이야기 할 필요가 없었고, 도착하니깐 10가 넘었으니깐, 10시 넘으면 심야요금을 추가로 받는다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 10시 넘어서도 보통 영국문화원에서 집까지 50루피에 다니는 코스이다. 그렇지않아도 10루피 더 줘서 기분도 안 좋은데, 나도 마구 대들었다. 무슨 소리하냐, 전에 10시 넘어서 다닐 때도 그런 거 없었다. 12시 넘어야 심야요금 받는 거 아니냐?
그렇더니, 제도가 바꿨다면서 자기가 하는게 맞다고 우기는데, 정말 말 많다. 항상 느끼지만 인도인하고 말싸움해서 이기는 외국인 없다. 집 앞에서 약10분을 싸웠다. 그냥 돈 놓고 들어가려고 하니, 팔목을 잡고 안 놔준다. 그러니, 나도 오기가 생길 수 밖에. 나도 화가 나서 경찰서 가자고 했다.
그렇더니, 그러자고 하네… 참, 웃긴 놈이다.
경찰서를 가자고, 같이 릭샤를 다시 탔다. 출발했다. 경찰서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조그만 가면 된단다. 조금 가다가 다시 “어디냐?” 물었더니, 메디칼에 있다고 한다. 무진장 먼 곳이다.
갑자기 머리를 굴렸다. 이놈하고 경찰서가서 내가 말 싸움 이겨서 그냥 나온다고 해도, 거기서 다시 집으로 오려면 릭샤로 최소25루피는 주어야 하는 거리이다. 또, 괜히 겁난다. 늦은 밤인데, 이상한데로 몰고 가서 단체강도질을 당하지는 않을까하고.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기 때문에 슬쩍 겁도 났다. 또, 경찰서에도 이것 저것 물어보고 하면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난 당장 릭샤를 세웠다. 마침 이놈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금방 릭샤를 세운다.
“내가 10루피 더 줄테니깐, 지금 당장 내 집까지 돌아가자. 싫으면 계속 경찰서 가고, 이거 마지막 제안이다.” 그랬더니, 조금 생각하더만, 그렇게 합의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그놈하고 싸운 시간이 무려 30분정도 걸렸다. 아~ 시간 아까워라.
갑자기, 회의에 빠졌다. 그냥 처음에 10루피 더주고 말걸… 하지만 나도 오기가 있지, 아예 첨부터 그런 것도 아니고 멀쩡히 사람을 바보로 만드니, 화가 날 수 밖에. 그리고 가격을 빤히 아는 코스인데. 돈이 아까운것 보다도 뻔히 아는 가격인데 속는 호구되는게 싫어서 싸운고 난리친것 같다.
하여간에 그런 오늘 같은 릭샤왈라를 만나는 날에는 정말 재수 옴 붙은 날이다.
일부 릭샤왈라는 좋은데, 대부분의 릭샤왈라는 사기꾼 기질이 있다. 게중에 몇 명은 오늘 그 놈처럼 악질이다. 아~ 짜증난다.
2002년 3월 19일, 제 낡은 일기장에는 그날 밤 겪었던 30분간의 격렬한 사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힌디어로 5분간 흥정해 60루피에 합의한 릭샤 왈라가, 도착해서는 10시가 넘었다는 핑계로 80루피를 요구했던 사건입니다.
"그냥 돈 놓고 들어가려고 하니, 팔목을 잡고 안 놔준다. 그러니, 나도 오기가 생길 수 밖에. 나도 화가 나서 경찰서 가자고 했다... 시계를 보니, 그놈하고 싸운 시간이 무려 30분정도 걸렸다. 아~ 시간 아까워라... 돈이 아까운것 보다도 뻔히 아는 가격인데 속는 호구되는게 싫어서 싸운고 난리친것 같다."
그날 밤, 20루피 때문에 경찰서까지 갈 뻔했던 그 30분의 시간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저의 17년 인도 생활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 '협상(Nego)'에 대한 값비싼 첫 수업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산다는 것은,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협상의 연속입니다.
1. 일상: 네고는 생존이다
2002년의 릭샤 왈라와의 싸움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야채 가게 상인부터, 집주인, 심지어 지금은 대형 쇼핑몰의 멀쩡하게 생긴 '정찰제(Fixed Price)' 가게에서조차 흥정이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중국 상인도 울고 간다는 인도 상인들과의 '네고'는 단순한 가격 흥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의 의지를 시험하고, 관계를 맺으며, '내가 당신에게 속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종의 사회적 게임이자 생존 방식입니다. 2002년의 제가 10루피를 더 주더라도 '합의'를 통해 주려고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이겼다' 또는 '대접받았다'는 명분이 중요한 것이죠.
2. 비즈니스: 네고는 예술이자 '의식(Ritual)'이다
이러한 일상적인 네고는 제가 16년간 기업(LG전자, 바텍)에서 주재원과 법인장으로 일하며 겪었던 비즈니스 협상 테이블에서 거대한 스케일로 재현되었습니다.
제가 판매했던 제품들은 작게는 10만 루피(약 170만 원)에서 비싸게는 500만 루피(약 8천5백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의료 장비였습니다. 고객인 병원 원장이나 의사들은 인도 최고의 엘리트들이지만, 협상에 임하는 방식은 릭샤 왈라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 끝나지 않는 네고: 견적서를 보내고 계약이 성사되기까지 6개월, 심지어 1년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1루피까지 깎기 위해 끊임없이 인내심을 시험합니다.
- CEO의 등판: 협상의 마지막 '의식': 인도 비즈니스 협상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결정권자'의 등판입니다. 실무 영업사원이 가격을 제시하고, 영업팀장이 조정하고, 영업 총괄 헤드가 최종안을 제시해도 고객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법인장(CEO)인 저와의 만남을 요구합니다.
왜일까요? 단순히 몇 푼 더 깎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내가 이만큼 중요한 고객이기에, 이 회사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와 나를 대우하고 최종 가격을 승인했다"**는 명분을 원합니다. 법인장인 제가 직접 나서서 약간의 추가 할인을 더하거나 혹은 최종선을 그으며 악수를 청할 때, 비로소 그들은 만족하며 1년 동안 끌어온 기나긴 협상에 도장을 찍습니다.
3. 네고하는 자, 네고를 막는 자
결국 인도에서의 제 17년은, 릭샤를 탈 때는 어떻게든 가격을 깎으려는 '협상자'의 역할과,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가격을 지켜내려는 '방어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나날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10루피를 깎기 위해 언성을 높이다가도,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수백만 루피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상대의 요구를 방어해야 하는 일상의 연속. 이 과정은 저에게 인도 비즈니스의 본질이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니라,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고도의 심리전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20여 년 전, 뻔히 아는 가격에 속아 '호구'가 되는 게 싫어 30분간 싸웠던 그 젊은 날의 오기. 돌이켜보면 그날의 릭샤 왈라는 저에게 인도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준 가장 혹독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날의 패배(?)가 있었기에, 훗날 1년간의 지루한 협상 테이블에서도 웃으며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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