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10일, 수요일, 델리, 맑음
91.1 CDMA 시스템 입찰 소식(200만회선)
인도 최대 CDMA WLL사업자인 BSNL이 올 상반기에 WLL(CDMA) system관련 국제입찰을 open할 것이라는 뉴스가 오늘 아침 신문에 발표가 되었다.
용량은 170만에서 200만 회선인 것으로 발표하였으며, 회선 당 단가는 Rs 6,000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그 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System구매에 따라 WLL Terminal과 CDMA Phone의 입찰도 이어질 것이라 업계에서 예상을 하고 있으나, 2001년에 입찰한 약 40만대 정도가 올해 공급될 경우, 2003년에나 입찰이 진행될 것으로 개인적으로 생각이 된다.
여하튼 정부 사업자가 CDMA서비스를 강행할 예정인 바, CDMA에 강한 우리회사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23년 전 오늘, 델리의 신문들은 일제히 굵직한 헤드라인을 뽑아냈습니다. 당시 LG전자 모바일 사업부 소속으로 파견 나와 있던 저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소식이었죠.
<2002년 4월 10일의 일기>
91.1 CDMA 시스템 입찰 소식(200만회선) 인도 최대 CDMA WLL사업자인 BSNL이 올 상반기에 WLL(CDMA) system관련 국제입찰을 open할 것이라는 뉴스가 오늘 아침 신문에 발표가 되었다. 용량은 170만에서 200만 회선인 것으로 발표하였으며... (중략) 여하튼 정부 사업자가 CDMA서비스를 강행할 예정인 바, CDMA에 강한 우리회사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1. 왜 인도는 뜬금없이 CDMA를 선택했을까?
당시 전 세계 이동통신 시장은 유럽 방식인 GSM이 장악하고 있었고, 인도 역시 GSM을 표준으로 채택하여 에어텔(Airtel), 허치(Hutch, 현 Vodafone) 등이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도 정부는 돌연 미국 방식인 CDMA 기술을 기반으로 한 WLL(Wireless Local Loop) 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합니다. WLL은 쉽게 말해, 유선 전화선을 집까지 깔기 힘드니 기지국을 세워 무선으로 연결하는 '고정형 무선 전화'였습니다. 땅은 넓고 인프라는 부족한 인도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아이디어였죠.|

하지만 이 결정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었습니다. 훗날 릴라이언스(Reliance) 그룹이 이 기술을 이용해 이동통신 시장에 뛰어들면서, 인도는 GSM과 CDMA라는 서로 호환되지 않는 두 개의 망을 동시에 까는 사상 초유의 **'중복 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2. 한국 기업에겐 '기회', 인도 정부에겐 '헛발질'?
지난번 포스팅(거대한 코끼리는 왜 비틀거리는가?)에서 언급했듯이, 이 정책은 인도 정부의 대표적인 비효율 사례로 꼽힙니다.
정치적 논리와 특혜 시비 속에 강행된 CDMA 도입은 결국 주파수 전쟁과 막대한 자원 낭비를 초래했습니다. 전 세계가 GSM으로 통합되어 갈 때, 인도는 갈라파고스처럼 두 기술을 다 쥐고 흔들렸으니까요.
하지만 **한국 기업(LG전자, 삼성전자)**에게 이것은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세계 최고의 CDMA 기술 보유국이었으니까요. 이 기회를 틈타 한국 기업들은 2010년대 초반까지 인도 시장에 천문학적인 숫자의 휴대폰과 통신 장비를 수출하며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제 일기 속 "우리 회사에게 좋은 기회"라는 예감이 적중한 셈이죠.

3. 역설적인 결과: 혼란이 가져온 '통신 혁명'
그렇다면 이 중복 투자는 실패로만 끝났을까요? 역사는 재미있게도, 이 혼란 속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① 살인적인 경쟁이 만든 '요금 인하' 릴라이언스가 CDMA 기술로 시장에 진입하며 내건 슬로건은 **"엽서 한 장보다 싼 통화료"**였습니다. (Monsoon Hungama 캠페인). 기존 GSM 사업자들의 독점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가격 경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비쌌던 인도의 통신 요금은 세계에서 가장 싼 수준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전화 받는 데도 돈을 내던" 시절이 끝나고, 서민들도 휴대폰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② 유선에서 무선으로의 '퀀텀 점프' CDMA WLL의 도입은 인도가 유선 전화(구리선) 시대를 건너뛰고 바로 무선 시대로 진입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프라가 없는 시골 마을까지 통신망이 깔리기 시작했고, 이는 오늘날 인도의 디지털 경제를 떠받치는 거대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4. 2002년의 나비효과
2002년 BSNL의 그 입찰 공고는 단순한 뉴스 한 줄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고 정치적 논란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인도 대륙을 하나로 연결하고 14억 인구가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만든 통신 혁명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CDMA로 시장을 흔들었던 릴라이언스는, 훗날 2016년 **'지오(Jio)'**라는 이름으로 4G LTE 혁명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인도를 뒤집어 놓습니다.
정부의 헛발질조차 시장의 역동성으로 흡수해버리는 나라. 그것이 바로 제가 17년간 목격한 인도의 저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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