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12일, 금요일, 델리, 맑음
93.1 인도인들이 과연 영화를 무진장 좋아할까?
거의 모든 인도관련 책자에는 인도인들은 영화를 무진장 좋아한다고 적혀 있다.
과연 그럴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분명히 옛날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말하는 옛날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에 이야기이다.
그 당시 인도는 전통적인 쇄국정책에 의하여 외국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시절, 관세도 보통 200%이상 하던시절 이야기이다. 불과 10년전 이야기이다. 이때는 흑백 TV에 오전 2시간, 저녁 3시간 힌디어 방송에 영어 뉴스 30분씩이 유일했었는데, 특별히 유흥문화가 없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영화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현실도피의 수단으로써 인도인들이 반강제로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는 사회구조였다. 그 때 당시,북한이 무료 공급한 북한영화를 보면서 인도인들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이해할 정도로 세계정보에 무지했다
즉, 영화는 유일한 유흥 도구였으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놀이 수단… 더 어떻게 설명하랴… 1개 밖에 없는데, 그거 빼면 할게 없으면 당연히 모두다 무진장 좋아하는 것처럼 외국인들에게 비쳐질 수 밖에…안보면 왕따 당했음. 또 그 당시 그게 유일한 칼라방송을 보는 것이었음.
그러한게 1990년대초에 인도에 IMF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을 때 즈음 개방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칼라티브이가 드디어 선보이고 케이블 방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케이블 티비는 한마디로 인도인에게 “문화적 충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케이블 티비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홍콩의 STAR TV로 미국 등 선진국의 프로그램이 컬러로 상영되면서 가장 인기를 끈 것은 해변가에서 인명 구조를 하는 "베이워치"란 프로그램.
고아, 뭄바이를 제외한 도시에서 미니스커트를 볼 수 없고, 델리도 청바지 차림의 대학생이 30%가 안 되는 보수적인 나라, 인도에 몸매가 모두 드러나는 수영복 차림의 주인공들과 시도 때도 없이 틈만 나면 키스를 하는 이 프로그램이 인기 톱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임이 분명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그러한 문화적 충격이 인도인의 영화사랑에 찬물을 끼얹게 됐다. 영화보다 케이블티비가 더 재미있으니깐,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5~6년전 이야기이다.
추가로, 요즘 영화관에 가면 인도영화보다, 서양 할리우드 영화가 먼저 표가 팔려 나간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인도인들이 자국영화만 무진장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한물간 이야기 같다.
그 동안 40년간의 인도의 쇄국정책은 현재 인도인들의 문화적 가치관에도 많은 혼란을 주고 있는 듯 하다.
인도란 나라가 세상에 문을 연 것은 불과 10년밖에 안됐다.
오늘 23년 전 일기장을 펼치니, 당시 델리에서 헐리우드 영화의 인기를 목격하며 던졌던 도발적인 질문이 눈에 띕니다. "인도인들이 과연 영화를 무진장 좋아할까?"
<2002년 4월 12일의 일기>
93.1 인도인들이 과연 영화를 무진장 좋아할까? 거의 모든 인도관련 책자에는 인도인들은 영화를 무진장 좋아한다고 적혀 있다. 과연 그럴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분명히 옛날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중략)
특별히 유흥문화가 없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영화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현실도피의 수단으로써 인도인들이 반강제로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는 사회구조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케이블 티비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베이워치"란 프로그램이 인기 톱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임이 분명했다. 영화보다 케이블티비가 더 재미있으니깐...
1. 2002년의 관찰, 과연 맞았을까?
20여 년 전, 저는 "할게 영화밖에 없어서 좋아하는 척하는 것 아니냐"라고 의심했습니다. 지금 보니, 저의 그때 관찰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맞은 점 (유흥의 부재): 정확합니다. 1991년 경제 개방 이전까지 인도인들에게 엔터테인먼트는 국영 방송(Doordarshan)과 영화가 전부였습니다. 영화는 유일한 탈출구였죠.
- 틀린 점 (발리우드의 저력): 당시 할리우드와 케이블 TV의 공습이 거셌던 건 사실이지만, 인도인들의 자국 영화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2001년 개봉한 '라간(Lagaan)', '가다르(Gadar)', '까비쿠시 까비감(K3G)' 등은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으니까요. 그들은 새로운 문물을 즐기면서도, 여전히 춤과 노래가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사랑했습니다.

2. 보수적인 사회의 해방구, 영화관
그렇다면 왜 그토록 영화관에 집착했을까요? 인도에서 영화관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곳 이상의 **'사회적 해방구'**였습니다.
- 연인들의 유일한 도피처: 보수적인 인도 사회에서 결혼 전 남녀가 공개적으로 데이트할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두컴컴한 영화관은 연인들이 남의 시선을 피해 손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공간이었습니다.
- 대가족의 피크닉: 좁은 집에서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에게,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극장은 가장 저렴하고 완벽한 가족 나들이 장소였습니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중간 쉬는 시간(Interval)에 먹는 사모사와 팝콘은 소풍 그 자체였죠.
- 현실 도피 (Masala Movie): 가난하고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권선징악과 판타지가 섞인 '마살라 영화'는 고단한 서민들에게 3시간짜리 마취제이자 꿈이었습니다.
3. 1991년 개방, 그리고 2025년 넷플릭스의 습격
1991년 경제 개방이 1차 문화 충격(케이블 TV)을 가져왔다면, 2016년 지오(Jio)의 데이터 혁명 이후 찾아온 OTT(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핫스타 등)는 2차 문화 혁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 수치로 보는 변화: 2024년 기준, 인도의 OTT 시청자 수는 약 4억 8천만 명에 달합니다. (출처: The Ormax OTT Audience Report). 이는 미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 콘텐츠의 변화: 검열이 심한 극장 영화와 달리, OTT 오리지널 시리즈(예: Sacred Games, Mirzapur)는 폭력, 욕설, 종교, 정치 등 금기시되던 주제를 과감하게 다루며 젊은 층을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 문화적 수용성: 한국 드라마(K-Drama)가 인도 안방을 점령한 것도 이 OTT 덕분입니다. 2002년 '베이워치'를 보며 충격받던 인도인들은 이제 '오징어 게임'을 보며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야기합니다.
4. 영화관의 진화: PVR과 럭셔리
그럼 극장은 망했을까요? 아닙니다. 쇼핑몰 문화와 결합하여 **'럭셔리 체험 공간'**으로 진화했습니다.
이제 인도의 멀티플렉스(PVR, INOX 등)는 한국보다 화려합니다. 누워서 보는 침대 좌석, 호텔급 식사가 서빙되는 골드 클래스는 기본입니다. 영화는 이제 '서민의 유일한 오락'에서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로 격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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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인도인들의 영화관 사랑, 인도 영화관 수준
2002년1월26일, 토요일, 델리, 흐림 17.1 개국 기념일오늘 이 나라의 “Republic Day”라고 하는 공휴일이다. 나라 세운 날이라고 한다. 오늘 인디아게이트 주변으로 퍼레이드가 있다고 해서 가려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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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래서, 인도인은 영화를 더 좋아하는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유별나게 좋아합니다."
인도는 연간 약 2,000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세계 1위의 영화 생산국입니다. (할리우드의 2~3배). 좋아하는 배우의 신작이 개봉하면 우유를 붓고 기도를 올리는(Palanishikam) 팬덤 문화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매체는 흑백 TV에서 케이블로, 그리고 스마트폰 속 넷플릭스로 바뀌었지만, **'이야기(Storytelling)'**를 사랑하고 그 속에 빠져들어 울고 웃는 인도인들의 DNA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인도 비즈니스를 하신다면 기억하세요. 이들은 논리보다 **'스토리'**에, 이성보다 **'감성'**에 반응하는 민족입니다. 그들의 영화 사랑은 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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