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18일, 목요일, 델리, 맑음

99.1 첫날 힌디 시험
오늘부터 시험이 시작됐다.
이번 시험기간동안 나의 모든 생활패턴이 시험대비태세로 돌입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고, 따라서 일기내용도 사실 시험내용 밖에 쓸 일이 없을 거 같다. 사실 어제오늘 일기 쓸 시간도 없다.
(따라서, 요 기간동안에 내 일기를 가지고서 맨날 똑같은 내용이니, 어쩌니 하는 평가는 당분간 하지 말아주시길. 솔직히 다른거 돌아볼 시간이 없네요. 시험 끝나고 나면 다시 다양한 정보로 멋진 일기를 기술하겠습니다.)
오늘은 본문과 어휘력 테스트였다.
내가 가장 자신이 없는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중간에 합류를 했기 때문에 내가 안배운 내용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적어서 주로 문법위주와 회화위주로 공부했기 때문에, 어휘력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핑계는 이제 그만하고, 결과가 과연…
대충 70% 정도는 맞은 거 같다. 이정도면 합격 점수이다. 공부한거에 비하면 잘 본 거 같다.
오늘은 이상. 내일 시험공부 해야지. 참, 내일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문법시험이다.
23년 전 오늘, 저는 힌디어 자격증 시험 첫날을 치르고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저를 괴롭힌 건 '어휘력'이었습니다. 늦게 합류한 탓에, 그 어려운 산스크리트어 기반의 고급 어휘들을 다 외우지 못했기 때문이죠.
<2002년 4월 18일의 일기>
99.1 첫날 힌디 시험
오늘부터 시험이 시작됐다. 이번 시험기간동안 나의 모든 생활패턴이 시험대비태세로 돌입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고...
오늘은 본문과 어휘력 테스트였다. 내가 가장 자신이 없는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중간에 합류를 했기 때문에 내가 안배운 내용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대충 70% 정도는 맞은 거 같다. 이정도면 합격 점수이다. 공부한거에 비하면 잘 본 거 같다.
참, 내일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문법시험이다.
일기 끝머리에 "문법은 자신 있다"고 적혀 있네요. 17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인도 생활에서 진짜 중요한 건 그 어려운 단어 암기가 아니라 바로 그 **'문법 자신감'**이었습니다.
1. 2002년의 내가 몰랐던 것: '순수 힌디어'의 함정
당시 시험을 위해 제가 외웠던 단어들은 이른바 **'슈드 힌디(Shuddh Hindi, 순수 힌디어)'**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인도인들과 부대끼며 깨달은 사실은, 그들도 그 어려운 단어를 잘 안 쓴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한 단어를 구사하면 인도인들이 "너 힌디어 교수님이니?" 혹은 "북한 뉴스 아나운서 같다"는 반응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는 영어가 제2공용어이자 비즈니스 언어이기 때문에, 일상 대화의 30~50% 이상이 영어 단어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2. 인도의 진짜 언어 = '힝글리시(Hinglish)'의 공식
인도인들의 대화법을 가만히 들어보면 재미있는 패턴이 있습니다. 바로 **[힌디어 문법 구조 + 영어 단어]**의 조합입니다. 이것이 바로 **'힝글리시'**입니다.
법인장으로서 제가 터득한 힝글리시의 공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공식: 힌디어의 뼈대(문법)를 세우고, 그 빈칸을 영어(단어)로 채워라.
- 동사 활용: 영어 동사 뒤에 ~까르나(Karna, 하다)만 붙이면 됩니다.
- 시험용: "프라틱샤 까로 (Pratiksha karo)" - 기다리세요.
- 실전용: "Wait 까로" - 기다리세요.
- 응용: "Call 까로" (전화해), "Check 까로" (확인해), "Change 까르나" (바꾸다)
- 명사 활용: 어려운 힌디어 명사 대신 그냥 영어를 씁니다.
- 시험용: "비댜라야(Vidyalaya) 가고 있어." - 학교 가고 있어.
- 실전용: "School 가고 있어."
- 응용: "Meeting 언제야?", "File 어디 있어?", "Problem이 뭐야?"
3. 비교 체험: 교과서 vs 현실 비즈니스
2002년 제가 시험지에 적었던 답안과, 2025년 지금 사무실에서 제가 직원들에게 지시하는 말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명확합니다.
| 상황 | 교과서 힌디어 (시험용) | 실전 힝글리시 (법인장용) |
| 문제 있어? | 꺄 꼬이 사마쌰(Samasya) 해? | 꺄 꼬이 Problem 해? |
| 기차역 | 로우 파트 가미니 스탈 | Railway Station |
| 신뢰 | 비슈와스(Vishwas) | Trust 또는 Confidence |
| 결정하다 | 니르나이 레나(Nirnay Lena) | Decide 까르나 |
| 업무 지시 | "이 서류를 검토하고 보고하세요." | "이스(This) File 꼬 Check 까로, 아우르(And) Report 꼬 Send 까로." |
보시다시피, 문법 조사인 ~꼬(~를), ~메(~에), ~세(~로/부터)와 같은 **조사와 어순(주어-목적어-동사)**만 힌디어로 지키면, 단어는 100% 영어를 써도 완벽하게 소통됩니다.
4. 왜 그들은 섞어 쓰는가?
이것은 단순한 언어 파괴가 아닙니다. 인도의 다언어 환경이 만들어낸 효율성의 산물입니다.
14억 인구 중 힌디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영어 단어는 전 국민이 공유하는 공통분모죠. 그래서 어려운 힌디어 단어보다 쉬운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것이 서로 오해를 줄이고 의사소통을 명확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심지어 요즘 발리우드 영화 제목이나 광고 카피도 대부분 힝글리시로 나옵니다. "Life set hai (인생이 세팅됐다/풀렸다)" 처럼 말이죠.
5. 맺음말: 문법이 중요한 이유
2002년 일기에서 "어휘는 약해도 문법은 자신 있다"고 했던 저의 상태는, 역설적으로 **'인도에서 살아가기에 가장 최적화된 상태'**였습니다.
문법(Structure)을 모르면 영어 단어를 나열해도 '콩글리시'나 '브로큰 잉글리시'가 되지만, 문법을 알면 영어 단어를 섞어도 **'유창한 힝글리시'**가 됩니다. 인도인들은 후자를 훨씬 더 친근하게 느끼고 "우리말을 잘한다"고 인정해 줍니다.
인도 주재원이나 사업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팁!
두꺼운 힌디어 단어장은 잠시 덮어두셔도 좋습니다. 대신 **'문장의 구조'와 '기본 문법'**만 확실히 잡으세요. 나머지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영어 단어가 해결해 줄 겁니다. 그리고 그 문장의 구조와 기본 문법은 한국어와 비슷하다라는 것 !!!
"Tension(걱정) 나히(No) 레나(Take)! (걱정하지 마세요!)"
이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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