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22일, 월요일, 델리, 맑음
103.1 세번째 힌디 시험날 – 받아쓰기, 쓰기
오늘은 힌디시험의 3번째 날이다.
오늘의 과목은 “받아쓰기”와, “쓰기”이다.
3시간의 시간중에 2시간 20분정도를 쓰고 나왔다.
받아쓰기는 비교적 정확하게 잘 받아쓴거 같고, 쓰기에서 좀 많이 틀린거 같다. 그래도 75점에서 80점 정도는 나올거 같다.
문법하고 쓰기가 그래도 제일 자신있는 과목이었으니깐.
내일 시험은 오럴테스트이다. 지금 일기 그만 쓰고, 그거 준비 해야 한다.
오늘 일기 끝.
힌디어 자격증 시험 3일 차. 그날은 '받아쓰기'와 '쓰기' 시험이 있었네요. 시험장을 나오며 저는 꽤 자신감에 차 있었던고ㄹ 기억합니다. 왜냐구요? 힌디어는 들리는 대로 적으면 되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정직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2002년 4월 21일의 일기>
103.1 세번째 힌디 시험날 – 받아쓰기, 쓰기 받아쓰기는 비교적 정확하게 잘 받아쓴거 같고, 쓰기에서 좀 많이 틀린거 같다. 그래도 75점에서 80점 정도는 나올거 같다. 문법하고 쓰기가 그래도 제일 자신있는 과목이었으니깐.
1. "라면 부스러기? 빨래줄?" 힌디어 글자의 첫인상
여러분은 힌디어 글자(스크립트)를 보신 적이 있나요? 'नमस्ते' (나마스떼 -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분들은 "이게 글자야, 그림이야?" 혹은 "라면 부스러기 떨어뜨린 것 같다"고 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글자 위에 쭉 그어진 **긴 가로줄(Shirorekha)**입니다. 마치 빨래줄에 글자들을 조로록 널어놓은 것 같죠. 그래서 힌디어는 띄어쓰기를 할 때 이 줄을 끊어주는 것으로 단어를 구별합니다. 처음엔 낯설지만, 익숙해지면 이 줄 덕분에 문장이 아주 정돈되어 보입니다.
2. 세종대왕도 놀랄 100% '표음문자'
제가 일기에서 "받아쓰기를 잘 봤다"고 자신한 이유가 있습니다. 힌디어(데바나가리 문자)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완벽한, 즉 순수 표음문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우리 한글과 정말 닮았습니다. 영어의 경우 'A'가 [아], [에], [어], [에이] 등 상황에 따라 소리가 바뀌어서 받아쓰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힌디어는 '아' 소리가 나는 글자는 천 년이 지나도 무조건 '아'로만 발음됩니다.
즉, 알파벳만 외우면 뜻을 몰라도 읽고 쓸 수 있습니다. 이는 외국인으로서 인도에 살 때 엄청난 무기가 됩니다.
3. 까막눈 탈출의 희열: 간판이 읽힌다!
제가 힌디어를 공부하고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시험 합격이 아니라, '거리의 간판'이 읽히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버스 터미널에 갔는데 꼬불꼬불한 글씨가 보입니다. 배운 대로 더듬더듬 읽어봅니다. '버... 스... 스... 탠... 드...' (Bus Stand) 아! 이거 영어네!

인도의 많은 표지판은 힌디어 단어가 아니라, 영어를 힌디어 글자로만 바꿔 써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아마도 영국 식민지 오래 하면서 그런 영향이 많은 듯합니다) '약국(Pharmacy)', '역(Station)', '호텔(Hotel)'...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자, 낯설고 두렵기만 했던 델리의 거리가 비로소 내가 사는 동네처럼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뜻은 몰라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인도 생활의 자신감이 몇 배는 올라갑니다.
4. 하지만 '발음'은 제대로 배워야 한다
물론 쉬운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표음문자라는 건, 반대로 말하면 **'발음이 부정확하면 아예 다른 글자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힌디어에는 한국어에 없는 발음들이 있습니다.
- 유기음 vs 무기음: 바람을 세게 빼느냐(Kha), 안 빼느냐(Ka)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 반설음(Retroflex): 혀를 입천장 깊숙이 말아 올리는 '따', '다' 소리. (인도 영어가 독특하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이 발음 때문입니다.)
저는 다행히 2002년 당시 현지 힌디 학교에서 인도인 선생님들의 입 모양을 보며 이 기초를 혹독하게 훈련했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힌디어를 한마디 툭 던지면 인도인들이 "발음이 네이티브 같다"며 깜짝 놀라곤 합니다.
처음 배울 때의 고생이 평생의 발음을 결정합니다.
5. 맺음말
31살의 신성기, 시험 기간이라 일기 쓸 시간도 없다며 투덜댔지만, 그때 흘린 땀방울 덕분에 저는 지금도 인도의 어느 시골길을 가든 간판을 읽으며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혹시 인도 여행이나 생활을 꿈꾸신다면, 어려운 문법은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글자(데바나가리)'**만큼은 꼭 한번 익혀보세요. 외계어 같던 꼬부랑 글씨들이 여러분에게 말을 걸어오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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