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26일, 금요일, 델리, 맑음
107.1 힌디학교 졸업식(아니, 방학식): 인도 교육부 장관과 악수를 하다.
오늘 학교 성적표 증정식과 졸업식이 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학교에 분위기가 이상했다. 왠지 깨끗해져 보이고, 그동안 고장나서 한번도 안 돌아가던 에어컨이 돌아가질 안나… 좀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졸업식에 인도 교육부장관이 온다나… 이럴수가…
하긴 우리 학교가 인도정부기관 산하기관이니, 그 졸업식에 그럴수도 있지…
좀 기다리니, 차가 한 7~8대가 한꺼번에 줄서서 온다. 그중에 하얀 타타 옛날 꾸진 차인데, 좀 많이 길다. 그 차에 주인공이 타셨나 보다.
오잉~ 그런데, 거기서 내리는 사람이 여자네… 잠시 뒤에 남자 하나 더 내리고,,, 헷갈렸다. 에이.. 누가 교육부장관이야. 여자가 비서인가? 비서치고는 늙었고…
졸업식이 시작됐다. 교육부장관 연설시간이란다.
아~하… 저 여자가 교육부 장관이구나…
연설이 끝나고 그 여자가 성적표와 수료증을 일일이 외국인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악수를 했다.
나도 성적표랑 수료증 받고, 그 여자 교육부장관이랑 악수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못해 본 장관이랑 악수를 인도에서 했다.. 하하..
나의 성적 결과 : B+
잘 나왔다. 등수까지 나왔는데, 공동 6등을 했다.
우리 1학년반 인원수가 17명인데, 6등이면 상당히 잘한 편이다.
왜냐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남들의 반밖에 없었는데, 어쨌든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로써 켄드리아힌디산스탄(힌디학교이름)에 갈 일을 이제 없어졌다.
아~ 갑자기 오늘 또 보람을 느낀다.
이제부터는 정말 영어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런데, 갑자기 고향 생각이 많이 났다. 왜냐면;
다른 학우들은 학교 끝났다고, 또, 더운 여름이라고, 각자 자기네 나라로 돌아 간단다. 일본애들도 다 일본간다고 그러고, 러시아애들, 독일, 영국, 남아공, 인도네시아애들 전부다 다음달 초에 자기네 나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 동안 힘들어도, 학교에서 게네들하고 농담 따먹는 재미로 그래도 재미있게 학교 다녔는데, 이제 그런 친구들이 다 돌아가니, 참 아쉽다. 이제 나는 다시 혼자다….
마치, 처음 인도 온 것 처럼…
저는 그날 장장 4개월간의 힌디 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식장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평소엔 찜통 같던 강당에 찬 바람이 쌩쌩 불기 시작한 겁니다.
<2002년 4월 26일의 일기>
107.1 힌디학교 졸업식: 인도 교육부 장관과 악수를 하다. 아침부터 학교에 분위기가 이상했다. 왠지 깨끗해져 보이고, 그동안 고장나서 한번도 안 돌아가던 에어컨이 돌아가질 안나… 아니나 다를까, 오늘 졸업식에 인도 교육부장관이 온다나… 좀 기다리니, 차가 한 7~8대가 한꺼번에 줄서서 온다. 그중에 하얀 옛날 꾸진 차인데, 좀 많이 길다. 그 차에 주인공이 타셨나 보다. (중략) 나의 성적 결과 : B+ (공동 6등). 왜냐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남들의 반밖에 없었는데, 어쨌든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1. 장관님이 오시면 에어컨이 춤을 춘다: 인도의 'VVIP 문화'
일기 속 장면, 인도에 살아보신 분들이라면 무릎을 탁 치실 겁니다. 학생들이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릴 때는 "예산이 없다", "부품이 없다"며 방치되던 에어컨이, 장관(VVIP)이 온다는 소식 한 방에 거짓말처럼 고쳐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도의 **'보여주기식 의전(VVIP Culture)'**의 전형입니다. 인도는 관료주의와 계급 의식이 강해서, 윗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에 목숨을 겁니다. 도로의 구멍도 총리가 지나가면 하룻밤 사이에 메워지고, 쓰레기 더미도 장관이 오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2002년의 저는 "이럴 수가..." 하며 황당해했지만, 훗날 법인장이 되어 다시 겪어보니 이건 그들의 '생존 본능'에 가까웠습니다.
2. 도로 위의 제왕, '하얀색 앰배서더(Ambassador)'
일기에서 제가 "하얀 옛날 꾸진 차"라고 묘사했던 그 차. 브랜드는 힌두스탄 모터스(Hindustan Motors)의 **'앰배서더(Ambassador)'**였을 겁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 차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었습니다. **'움직이는 권력'**이었습니다. 둥글둥글한 곡선에 묵직한 차체, 그리고 지붕 위에 달린 빨간 경광등(Lal Batti). 이 차가 뜨면 도로는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습니다. 내부는 하얀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었죠.
지금은 단종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당시 하얀 앰배서더 뒷좌석에서 내리는 사람은 곧 '법'이었습니다. 제가 그 차에서 내린 여성 장관(아마도 국무장관급 인사였던 것 같습니다)과 악수를 했다니, 가문의 영광이었네요.
3. B+의 성취,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된 이방인
4개월의 사투 끝에 받아 든 성적표는 B+, 공동 6등. 남들보다 4개월이나 늦게 시작해 알파벳도 모르던 상태에서 일궈낸 결과라, 사실 1등보다 더 값진 성적표였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졸업식은 곧 이별식이 되었습니다.
다른 학우들은 학교 끝났다고, 또, 더운 여름이라고, 각자 자기네 나라로 돌아 간단다. 그 동안 힘들어도, 학교에서 게네들하고 농담 따먹는 재미로 그래도 재미있게 학교 다녔는데... 이제 나는 다시 혼자다….
주재원이나 유학생 생활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감정입니다. 정들면 떠나고, 마음을 주면 사라지는 관계들. 일본, 러시아, 영국 친구들이 짐을 싸서 떠난다는 소식에, 왁자지껄했던 학교가 갑자기 거대한 빈집처럼 느껴졌던 그 날의 쓸쓸함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 덕분에 저는 더욱더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델리라는 도시와 더 깊이 대화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안녕, 나의 첫 힌디 선생님. 안녕, 나의 친구들. 그리고 잘했다, 신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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