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16일, 목요일, 델리, 맑음
127.1 드디어 델리를 떠나기 위하여 짐을 싸고, 준비를 하다.
아~ 덥다. 정말 덥다. 정말 정말 거짓말 안하고 찜질방이다.
이 더운 델리를 드디어 떠나기 위해서 오늘 비행기표 알아보고, 호텔 예약 알아보고, 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인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델리를 떠나는 것이 인도를 사랑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금요일(내일) 떠날려고 한다.
오늘 짐을 쌌다. 그동안 델리에 4개월 넘게 있으면서 짐이 많이 늘었다.
겨울옷, 스피커, 많은 힌디책들과, 스레빠 같은것들. 이동을 하면서 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 것들은 따로 쌌고, 이동하면서 계속 가지고 다닐 여름옷, 컴퓨터, 중요서적, 기타등등은 따로 가방을 하나 더 사서 컴팩하게 쌌다.
이렇게 짐을 2분류로 분리해 놓고 보니, 드디어 델리를 떠나는게 실감이 난다.
내일, 두고 갈 짐은 아는 회사 직원집에 4개월동안 즉, 9월말까지 맡겨 놓기로 했다.
델리. 별로 정이 안가는 도시이다.
초기에는 노프라이버시 하숙집에서 너무 힘들었고, 좀 살만하다 싶더만 너무 더워서 싫어졌다.
127.2 진짜 더워서 잠을 한숨도 못잠
어제 밤에 최악의 사태가 드디어 벌어졌다.
그저께 화요일에는 낮에 전기가 하루종일 나가더니, 어제는 밤에 전기가 나갔다.
어젯밤 9시쯤에 전기가 나가더니, 아침 오늘 아침 6시에 전기가 복구된 것이다.
즉, 밤새도록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
낮에는 별로 전기도 안 나가고 괜찮았는데, 기습적으로 밤에 나간 전기가 나의 잠을 다 빼앗아 버렸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 2시가 넘어서 피곤함에 지쳐 눈을 감았으나,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계속 설잠에 설치고, 한시간 마다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다시 잠을 청하나, 거의 날을 새버렸다.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진짜 피곤했다.
결국 어제밤 11시반까지 전기가 안들어온다고 투정했던 일기의 후속편이 되어버렸네요. 아침까지 안들왔던 모양입니다. 인도 생활에서 낮의 정전은 견딜만합니다. 쇼핑몰로 피신하거나 카페에 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밤의 정전은 재앙입니다. 잠을 한숨 못자니 델리라는 도시가 정이 들래야 들수 있겠습니까?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인도를 좋아하려면 정말 이 한여름은 피해서 와야합니다.
이번 일기의 주제는 두개이지만, 실제는 하나를 관통하고 있네요. 델리 5월은 죽을만큼 덥다 !! 싸우지말고 피해라. 입니다.
원래부터 5월 중순 전국여행을 떠나는 계획이 있었지만, 이날의 9시간의 정전 끝에 저는 가급적 조기 탈출을 결론 내렸습니다. "델리를 떠나자!" 얼핏 보면 더위에 지쳐 도망가는 나약한 배낭여행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명을 좀 하자면, 5월의 델리 탈출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지배층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인도를 호령했던 권력자들은 이 미친 더위를 어떻게 버텼을까요? 정답은 **"버티지 않고 떠난다"**였습니다.

1. 영국령 인도의 여름 수도: 심라(Shimla)
1864년부터 1939년까지,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인들은 여름만 되면 델리와 캘커타를 비웠습니다. 그들은 히말라야 산맥 자락, 해발 2,200m에 위치한 **'심라(Shimla)'**를 **'여름 수도(Summer Capital)'**로 지정했습니다.
- 대이동의 장관: 단순한 휴가가 아니었습니다. 총독(Viceroy)을 포함한 고위 관료, 군대, 그리고 산더미 같은 행정 서류가 기차와 마차를 타고 대거 이동했습니다.
- 이유: 영국 신사들은 40도가 넘는 평야의 열기와 말라리아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년은 평지에서, 반년은 서늘한 산 위에서 인도를 통치했습니다.
- 힐 스테이션(Hill Station): 이때부터 영국인들이 더위를 피해 개발한 산악 휴양지들이 우티(Ooty), 다질링(Darjeeling), 마날리(Manali) 같은 '힐 스테이션'입니다.
2. 무굴 황제의 지상낙원: 카슈미르(Kashmir)
영국인들만 그랬을까요? 그 이전에 인도를 지배했던 무굴 제국의 황제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Shah Jahan)이나 자항기르(Jahangir) 황제는 여름이 오면 덥고 건조한 아그라와 델리를 떠나 북쪽 **'카슈미르(Kashmir)'**로 향했습니다.
- 지상낙원: 자항기르는 카슈미르의 시원한 바람과 호수를 보며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 살리마르 정원: 그들은 그곳에 아름다운 정원(Shalimar Bagh)을 짓고 여름 내내 풍류를 즐겼습니다.
심지어 라자스탄의 라지푸트 왕들도 사막의 더위를 피해 **'마운트 아부(Mount Abu)'**라는 유일한 산악 지대로 피서를 떠났습니다.
3. 2002년의 나: 역사를 계승하다
다시 2002년의 제 일기로 돌아옵니다.
<2002년 5월 16일의 일기>
드디어 델리를 떠나기 위하여 짐을 쌉니다. 인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델리를 떠나는 것이 길이다.
제가 오늘 짐을 싸는 것은 단순히 더워서 못 살겠다가 아니라, **"영국 총독의 지혜와 무굴 황제의 풍류를 계승하는 역사적 행위"**인 것입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죠? 하하.)
45도의 열기 속에 갇혀 서로 짜증만 내기보다는, 잠시 거리를 두고 시원한 곳에서 머리를 식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거대하고 뜨거운 나라, 인도를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일 것입니다.
4. 맺음말
혹시 5~6월에 인도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주저 말고 지도 위의 북쪽, **히말라야 자락(Himachal Pradesh, Ladakh)**이나 남쪽의 **고원 지대(Munnar, Ooty)**로 향하십시오.
과거의 왕들이 그랬듯, 더위와 맞서 싸우지 말고 '위(Altitude)'로 올라가세요. 저도 이제 왕들의 발자취를 따라 델리를 떠납니다. 애증의 델리여~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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