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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도 지역전문가

150. [인도 뭄바이 Part 2] 7개의 섬이 인간의 힘으로 빚어낸 인도의 관문

by 인도 전문가 2026. 1. 13.

2002년 6월8일, 토요일, 뭄바이, 흐림

 

150.1 뭄바이, 원래는 7개의 섬으로 된 도시였다.

뭄바이는 과거에는 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뭄바이는 그 중에 남쪽에 있는 H모양의 섬 이름이었는데, 나중에 이 이름이 도시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7개의 섬 이름은 다음과 같다.

마힘(Mahim), 파렐(Parel), 워리(Worli), 마자가온(Mazagaon), 봄베이(Bombay), 늙은여자의 섬(Old Womans Island), 콜라바(Colaba)

이렇게 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인데, 섬 사이가 뻘로 이루어져 있어서 항구를 만들기에 좋지 않은 조건인 상태였는데, 게다가 그 뻘에서 많은 병균들이 있어서 도시 지역이나, 항구 근로자들이 병에 자주 걸리는 등, 초기 포르투갈이 이 지역을 다스리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참고로, 포르투갈 공주가 영국에 시집을 갈 때 지참금으로 뭄바이를 바쳤는데, 그 까닭 중에 하나가 이런 이유때문이라고 한다.

하여간에, 영국이 지배한 후에 이 뭄바이의 권리를 동인도회사에게 넘겼는데, 동인도 회사에서는 이 7개의 섬을 다리와 뚝으로 막고 갯벌을 간척사업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이 간척사업과 항구건설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그 결과 19세기 초에 드디어 지금의 아주 훌륭한 뭄바이의 모습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인도의 경제수도인 뭄바이는 워낙 유명한 도시라서, 보통 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중요한 항구도시 였었을 것이라는게 일반사람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18세기 초까지만해도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한 지역이었고, 경제적, 군사적 가치가 거의 없는 지역이었답니다. 오죽하면 결혼지참금 대신에 뭄바이 땅을 넘기고, 단돈 년 10파운드에 도시 사용권을 넘겼겠습니까? (하기 2번 기술)

그런데 불과 200년 만에 인도의 경제수도로 천지개벽한 도시랍니다. 자, 그 뭄바이의 역사를 살펴보시지요.

뭄바이라는 도시! 뒷 배경은 옛 7개 섬의 지도랍니다.
뭄바이라는 도시! 뒷 배경은 옛 7개 섬의 지도랍니다.

1. 뭄바이: 이름의 유래와 고대 역사

  • 이름의 뿌리: 뭄바이(Mumbai)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수호여신인 '뭄바 데비(Mumba Devi)'에서 유래했습니다. 과거 영국식 명칭인 '봄베이(Bombay)'는 포르투갈어 'Bom Baim(좋은 항구)'에서 파생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 초기 통치: 뭄바이는 14세기까지 힌두교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1534년 포르투갈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1510년 고아를 포르투갈에 뺏기고 얼마 뒤에 일어난 일이지요.)

2. 영국으로의 이전과 동인도 회사

  • 지참금으로 넘겨진 도시: 위 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1661년 포르투갈의 카타리나 공주가 영국의 찰스 2세와 결혼할 때 결혼 지참금의 일부로 뭄바이를 영국에 넘겼답니다.
  • 동인도 회사의 임대: 찰스 2세는 관리가 까다롭고 질병이 들끓던 이 섬들을 1668년 영국 동인도 회사에 연간 단돈 10파운드(금화)의 임대료를 받고 또 넘겨버립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도시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3. 거대한 변화: '혼비 벨라드(Hornby Vellard)' 간척 사업

7개의 섬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간척 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 사업의 핵심: 1784년 당시 총독 윌리엄 혼비(William Hornby)가 주도한 '혼비 벨라드' 프로젝트를 통해 섬 사이의 낮은 갯벌과 늪지를 제방으로 막고 메웠습니다.
  • 희생과 탄생: 일기에 적어주신 대로, 말라리아와 콜레라 등 전염병과 고된 노동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으나, 1845년에 이르러 7개의 섬은 드디어 하나의 거대한 육지(Salsette 섬의 일부)로 통합되었습니다.

4. 지리적 중요성과 경제적 도약

  • 면화 산업과 남북전쟁: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으로 미국의 면화 수출이 중단되자, 전 세계의 시선이 뭄바이의 면화로 쏠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뭄바이는 세계적인 면직물 산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하며 '인도의 맨체스터'라 불리게 됩니다.
  • 수에즈 운하 개통 (1869년): 수에즈 운하가 열리면서 유럽에서 인도로 오는 항로가 비약적으로 단축되었고, 뭄바이는 인도 서부의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Gateway to India)'으로서 독점적인 지리적 이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 철도의 시발점: 1853년 인도 최초의 철도가 뭄바이(보리 분더)에서 타네까지 연결되면서 내륙의 자원을 항구로 모으는 물류 허브 기능이 완성되었습니다.

요약 및 지리적 가치

뭄바이는 단순히 땅을 넓힌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해의 전략적 요충지'라는 지리적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간의 의지로 지형을 바꾼 도시입니다. 오늘날 인도의 금융, 상업, 엔터테인먼트(볼리우드) 수도가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늪지를 걷어내고 항구를 건설한 19세기의 처절한 투쟁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