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10일, 월요일, 뭄바이, 구름
152.1 한국인 집에 초대되어 저녁식사를 함.
어제 교회에서 만났던 한국인 집에 초대되어 맛있는 한국식 저녁식사를 하였다.
그 집은 뉴뭄바이 지역에 있는데, 택시로 600루피 주고 1시간 반 걸려서 갔다. 뉴뭄바이 지역은 뭄바이가 포화상태가 됨에 따라서 정책적으로 이주를 시도하고 있는 지역인데, 이주 정책이 일관성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있어서 발전이 더딘 상태에 있다. 하지만 뉴뭄바이 내부의 도로망이라든가, 건물 등은 모두 새로 만든 상태라서 깨끗하게 잘 되어 있다. 나중에 뉴 뭄바이에 대하여 깊이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오늘 방문한 집의 아저씨는 원래 현대중공업 인도 주재원 생활을 8년간 하셨던 분인데, 인도에 처음에 1992년에 들어오셨다고 한다. 그 이후 회사를 나오셔서 개인사업을 인도에서 하고 있으신 분이다.
인도 아니, 뭄바이 생활만 10년째 하고 계시는데,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뭄바이 통이신 분이다.
뭄바이의 한인들의 소식과 함께 전반적인 뭄바이의 정보를 얻었다.
저녁식사도 맛있게 했다. 정말 오랜만에 김치를 먹었다. 거의 2달 만이다.
아이들도 3명이 있는데, 모두 뭄바이의 아메리칸스쿨에 보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2째와 3째는 한글보다 영어를 편하게 쓰는 것처럼 보인다.
152.2 한국 축구 미국과 비기다
지난번에 폴란드와의 한국전을 락샤드윕에서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꼭 보기로 맘먹고 기다렸다가 텔레비전으로 봤다.
오늘 미국과의 경기였는데, 보는 순간 우리나라 축구가 정말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전에 보기 힘들던 중앙돌파가 자주 보였고, 대충 공중에 띄운것 같았는데, 꼭 우리나라 선수가 그 자리에 가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웠다. 확실히 전에는 보지못했던 광경이다.
경기 결과는 1대1로 비겼지만, 실질적으로 경기를 리드했었다.
아쉽긴 아주 아쉬운 경기였지만, 금요일 포르투갈 전에서도 선전해서 꼭 16강에 들어갈 것을 의심치 않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미국전, 그 아쉬웠던 1:1 무승부의 기억이 생생하네요. 안정환 선수의 헤딩 골과 오노 세리머니가 떠오릅니다. 그 경기를 저는 뭄바이에서 보았답니다.
오늘의 블로그 포스팅의 주제는, 제가 당시 방문하셨던 '뉴 뭄바이(Navi Mumbai)'의 기억을 소환하여, <뭄바이 탐방기 제4탄: 터질 듯한 뭄바이, 어디로 뻗어가는가? (feat. 한인 거주지)> 포스팅을 작성해 보겠습니다.
우선 뭄바이의 지리적 한계와 도시 확장의 역사,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형성된 '한인 거주지(K-Town)'의 변천사를 2026년 시점으로 업데이트하여 정리했습니다.
[인도 뭄바이] 터질 듯한 도시의 탈출구, '뉴 뭄바이'와 한국인들의 보금자리
'2002년 6월 10일, 뭄바이. 구름.'
어제 뭄바이 한인교회에서 만난 분으로부터 기분 좋게 저녁 초대를 받아 '뉴 뭄바이(Navi Mumbai)'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택시로 1시간 반. 뭄바이 본토와는 달리 도로가 널찍하고 건물들이 새것이더군요. 이곳에서 10년 넘게 사신 '뭄바이 통' 교민분을 통해 이 복잡한 도시가 어떻게 숨통을 틔우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02년 6월 10일의 일기>
뉴 뭄바이 지역은 뭄바이가 포화상태가 됨에 따라서 정책적으로 이주를 시도하고 있는 지역이다. 내부 도로망이나 건물 등은 모두 새로 만든 상태라 깨끗하다. 이곳 교민 아저씨는 현대중공업 주재원 출신으로 뭄바이 생활만 10년째다.
오늘은 2002년 제가 방문했던 그 '신도시' 이야기를 시작으로, 뭄바이의 도시 확장 역사와 한국인들이 선택한 거주지에 대해 깊이 파보겠습니다.

1. 뭄바이의 저주이자 축복: '섬'이라는 한계
지도를 보면 뭄바이는 마치 바다를 향해 혀를 내밀고 있는 듯한 좁고 긴 반도(사실은 7개의 섬을 메운 것)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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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동쪽, 남쪽이 모두 바다로 막혀 있습니다. 즉, 도시가 커질 수 있는 방향은 오직 '북쪽(North)' 아니면 다리를 건너 '동쪽(East)' 뿐입니다.
150. [인도 뭄바이 Part 2] 7개의 섬이 인간의 힘으로 빚어낸 인도의 관문
2002년 6월8일, 토요일, 뭄바이, 흐림 150.1 뭄바이, 원래는 7개의 섬으로 된 도시였다.뭄바이는 과거에는 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뭄바이는 그 중에 남쪽에 있는 H모양의 섬 이름이었는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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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는 폭발하니 다음과 같은 만성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 '살인적인 집값': 뭄바이 남부의 집값은 뉴욕 맨해튼과 맞먹을 정도입니다.
- '교통 지옥':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 탓에 출퇴근 시간 병목 현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 '인프라 노후화': 낡은 상하수도와 무너질 듯한 건물들이 재건축 규제와 정치적 이슈로 방치되곤 합니다.
2. 탈출 러시: 뭄바이 확장의 역사
결국 도시는 살기 위해 밖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그 확장의 역사는 곧 뭄바이 부동산 개발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 1단계: 북쪽으로의 진격 (타네, Thane)
- 가장 먼저 개발된 곳은 뭄바이 바로 위쪽 위성도시 '타네'입니다. 호수가 많아 살기 좋고, 뭄바이 기차와 연결되어 있어 베드타운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 2단계: 바다 건너 신세계 (나비 뭄바이, Navi Mumbai)
- 제가 2002년에 방문했던 곳입니다. 1970년대부터 'CIDCO(시드코)'라는 개발청 주도로 계획된 '쌍둥이 도시'입니다.
- 2002년 당시엔 "깨끗한데 좀 썰렁하다"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IT 기업과 거주 단지가 꽉 들어찬 거대 도시가 되었습니다.
- 특히 최근 개통한 '아탈 세투(Atal Setu, 바다를 건너는 22km 다리)' 덕분에 뭄바이 본토에서 20분이면 닿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곧 '제2공항(NMIA)'까지 들어서면 명실상부한 제2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 3단계: 더 멀리, 더 넓게 (푸네 방향 & 북부 외곽)
- 이제는 나비 뭄바이를 넘어 고속도로를 타고 '푸네(Pune)'로 가는 길목인 판벨(Panvel) 지역, 그리고 북쪽 끝인 '미라-바얀다르(Mira-Bhayandar)'까지 도시가 무한 확장 중입니다.
3. 'K-Town'의 변천사: 한국인들은 어디에 사는가?
그렇다면, 이 복잡한 확장 속에서 한국 교민들과 주재원들은 어디에 터를 잡았을까요? 시기별, 목적별로 명확하게 나뉩니다.
① 뭄바이의 청담동, '반드라 (Bandra)'
- '특징': 뭄바이의 전통적인 부촌이자 연예인(샤룩 칸 등)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바다가 보이고 힙한 카페와 식당이 많습니다.
- '선택 이유': 가장 큰 이유는 '학교'였습니다. 최고의 국제학교인 'ASB(American School of Bombay)'가 근처에 있어, 자녀 교육을 중시하는 주재원 가족들이 높은 월세를 감수하고 모여 살았습니다.
② 유럽풍 신도시 '포와이 (Powai - 히라난다니)'
- 제가 2004년부터 2009년 뭄바이에 주재할 때 거주하였던 동네입니다.
- '특징': 뭄바이 중북부에 위치한 대규모 계획도시입니다. '히라난다니(Hiranandani)' 건설사가 그리스/로마풍으로 지은 고층 아파트 단지가 압권입니다.
- '선택 이유': 인도 특유의 복잡함이 싫은 분들에게 최고의 선택지였습니다. 보행자 도로가 잘 되어 있어 걸어 다닐 수 있고(인도에서 드문 일이죠), 단지 내에 병원, 마트, 학교가 다 있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기 좋았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식당과 마트도 이곳에 생겼다고 합니다.
③ 실속파의 선택, '뉴뭄바이 혹은 나비 뭄바이 (Navi Mumbai)'
- Navi는 힌디어로 New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뉴뭄바이보다는 현지에서는 나비붐바이로 불립니다.
- '특징': 계획도시라 도로가 넓고 녹지가 많습니다. 뭄바이 본토보다 집값이 합리적이고 집이 넓습니다.
- '선택 이유': 제가 만난 2002년의 지인분처럼 개인 사업을 하시거나, 나비 뭄바이 인근 공단(MIDC)에 진출한 기업(포스코 등) 관계자분들이 주로 거주합니다. 그 안에서는 교통 체증이 별로 없고, 특히 뿌네 가는 길에 옥스포드라고 하는 골프장에 가기가 편하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위성사진인에, 둘다 나비뭄바이입니다. 왼쪽은 개발이 거의 안된사진, 오른쪽은 아파트 및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사진입니다. 확대해서 보세요.
'마무리하며'
2002년, 택시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려갔던 그 먼 '뉴 뭄바이'가 이제는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30분 생활권이 되었습니다. 도시가 팽창하는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은 길을 내고 다리를 놓으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어갑니다.
그때 그 지인분의 아이들은 지금쯤 서른이 훌쩍 넘었겠군요. 영어보다 한국어가 서툴렀던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