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12일, 수요일, 뭄바이, 흐림
154.1 뭄바이 하버 쿠루즈
오늘 뭄바이 하버 쿠루즈를 했다.
게이트 어브 인디아 앞에서 출발하는 하버 쿠루즈인데, 30루피면 뭄바이 항을 한바퀴 돌아오는 쿠루즈이다.
배는 조그마한데 사람은 끝없이 태운다. 약 100명정도 탔다. 전부 인도인들인데, 오늘 쉬는 날도 아니고, 평일인데도 많은 가족들이 낮에 이렇게 놀고 있는 것이 잘 이해가 안됐다. 하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뭄바이 사람들이 아니고, 다른 지방사람들인데, 휴가 내서 뭄바이에 놀러 온 것이라고 한다. 하여간에 그들은 배에서 아주 즐겁게 즐긴다. 춤도 추고, 사진도 찍고, 정말 난리판이다. 사실 배에서 나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항구 구경은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특별한 것 없는 그런 쿠루즈인데, 인도인들은 마치 처음 배를 타 본 사람 마냥 엄청나게 좋아한다.
뭄바이 항, 역시 인도의 최대의 항임을 자랑할 만한 규모에 많은 배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군 항구가 같이 있는데, 전함과 잠수함들이 정박하고 있는 것들이 눈에 보였다. 역시 인도는 군사력 강대국임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2002년의 그 '별 볼 일 없었던' 하버 크루즈가 훗날 5년의 주재원 생활을 관통하는 중요한 통찰을 주었습니다.
"골프 치고 싶어서 치는 게 아니라, 골프 아니면 할 일이 없어서 친다."
이 문장, 인도에 계셨던 수많은 주재원분들이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할 명언입니다. 화려한 경제 도시의 이면에 숨겨진 '지독한 심심함'과 '레저 인프라의 부재'. 오늘은 이 역설적인 주제를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인도 뭄바이] 1,300만 도시의 역설: '놀 거리'가 없는 거대 도시와 주재원의 골프 사랑
'2002년 6월 12일, 뭄바이. 흐림.'
뭄바이에서의 며칠이 지나고, 무언가 색다른 '관광'을 해보고자 항구로 향했습니다. 이름도 거창한 '뭄바이 하버 크루즈'. 단돈 30루피. 배는 작았고 사람은 콩나물시루처럼 꽉 찼습니다. 솔직히 저에게는 그저 그런 항구 구경이었는데, 함께 탄 인도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적이었습니다.
<2002년 6월 12일의 일기>
배는 조그마한데 사람은 끝없이 태운다. 약 100명 정도 탔다. 그들은 배에서 아주 즐겁게 즐긴다. 춤도 추고, 사진도 찍고, 정말 난리판이다. 사실 배에서 나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인도인들은 마치 처음 배를 타 본 사람 마냥 엄청나게 좋아한다.
배 위는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습니다. 지방에서 휴가 온 가족들이라는데, 춤추고 노래하고 난리가 났더군요. 저는 지루해서 하품만 나오는데 말이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정서의 간극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리가 너무 자극적인 놀이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요, 아니면 이분들이 순수한 걸까요. 혹은 인도에는 정말 즐길 거리가 이다지도 없는 걸까요?

1. '노잼 도시' 뭄바이: 유적지도, 즐길 거리도 없다
냉정하게 말해, 뭄바이는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도시는 아닙니다. 역사가 짧아 델리나 아그라처럼 웅장한 고성이나 유적지가 전무합니다. (배 타고 나가는 '엘리판타 섬'이 유일하죠).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멋진 영국식 건물들이 볼거리의 전부입니다. 고대 유적을 기대하고 오셨다면 뭄바이는 과감히 패스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외국인이 많아 일부 지역(반드라, 콜라바 등)에 가면 클럽이나 바(Bar) 같은 밤문화가 있긴 합니다. 넘쳐나는 인도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면 그것도 재미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훗날 제가 주재원으로 이곳에서 5년을 살았지만, 저에게 뭄바이는 여전히 '재미없는 도시'였습니다. 특히 가족 단위로 주말에 뭔가 할만할 레크리에이션 시설이나 휴식 공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2. 13억 인구 대국의 '놀이 인프라' 빈곤
이것은 비단 뭄바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 심지어 델리나 뭄바이 같은 메가시티조차도 외국인(특히 한국인)이 만족할 만한 '여가/레저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빈곤합니다.
쾌적하게 산책할 공원이 있나요,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테마파크가 제대로 있나요, 아니면 맘 편히 문화생활을 즐길 시설이 넉넉한가요. 한국의 에버랜드나 한강 공원 같은 곳을 기대했다가는 큰코다칩니다.
13억 인구가 사는데, 정작 그들이 휴식을 즐기고 에너지를 발산할 건전한 '놀이 공간'이 너무나도 부족한 현실. 2002년 그 작은 배 위에서 열광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어쩌면 일상의 탈출구가 너무나 부족했던 그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3. 그래서 우리는 골프장으로 간다 (생존형 취미)
이러한 '놀 거리의 부재'는 인도 주재원 사회에 아주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전 교민(?)의 골퍼화'입니다.
주말 아침, 뭄바이(사실 골프장은 외곽에 몇 개 없어서 새벽같이 나가야 합니다)의 한국 아저씨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골프 가방을 메고 나섭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골프 말고는 할 게 없어서'입니다.
골프를 미치도록 사랑해서 치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대다수 주재원에게 골프는 선택이 아닌 '생존 수단'입니다. 척박한 인도 생활에서 유일하게 푸른 잔디를 밟으며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시간, 주말의 지루함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골프장도 몇 개 없어서 비싼 돈 주고 회원권을 사도 부킹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마무리하며'
30루피짜리 크루즈에서 춤추던 인도인들을 보며 느꼈던 그 묘한 이질감. 그것은 화려한 경제 성장 이면에 가려진 '여가 문화의 빈곤'을 마주한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은 넘쳐나지만 정작 맘 편히 즐길 곳은 없는 거대 도시 뭄바이. 그 속에서 오늘도 한국의 주재원들은 주말의 지루함과 싸우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골프채를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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